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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Dec 18. 2020

쓰지 않은 게 아니고, 쓰지 못한 게 아니고-

의식의 흐름으로 타파하는 게으른 글쓰기

이 시간에 글을 쓴다고? 새벽 1시. 컴퓨터를 켰다. 워드 프로그램을 열었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드린다. 원래 글은 새벽 감성으로 쓰는 것 아닌가. 타닥타닥. 뭐라도 막 쏟아낼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이래서 막 예술하는 사람들이 낮엔 자고 밤에 일어나서 생활하는 건가? 타다다다다다닥. 백스페이스만 신나게 누른다. 아. 난 역시 예술가는 아닌가 봐. 15분째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남은 문장이, 위와 같다. 투다다다다닥.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도망이라도 가면 몸을 좀 움직이니, 좋겠다. 에너지 소비량 최저 시대다. 전기가 아니라 내 몸이. 춥기도 춥고 바이러스도 바이러스라. 집. 차. 사무실. 차. 집. 의 연속.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커피를 사 마시는 것도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여러분, 2020년 겨울부터 사람들은 밖에서 무언가를 사 먹는 걸 포기하게 되었어요. 집과 사무실에서 배달만 이용하는 거죠. 그렇죠. 진정한 배달의 민족이 된 거랍니다”라는 2100년대의 교과서가 등장한다면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우리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쓴다고 배달의 민족에서 광고가 들어오진 않겠지만. 요즘은 뭐만 하면 돈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며 살아서, 이렇다.


고민만 해서, 그렇다. 나아지는 건 별로. 아니,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세계를 내가 고민하고 움직인다고 해결되는 일이 뭐가 있간디? 그저 잘 견뎌내는 것. 그저 잘 살아내는 것. 그렇다. 어젯밤에 라이브 방송에서 금희 선배가 그랬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한 해가 올해라고. 음. 그런데 너무 살아 있다. 살아, 왜 그렇게 있니. 태어나서 가장 중력의 힘을 많이 느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구 이자이자이자식아. 안 그래도 힘든데 너까지 날 잡아당기고 있는 거니. 뭐라고? 내가 누르고 있는 거라고. 미안. 사실 지금도 배가 불러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야. 잠을 못 잘 정도로 저녁을 먹었거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를 이겨낼 거란다. 뭐라도 이기면, 좋은 거 아니겠니?


그런데 이기면, 좋은 걸까? 요즘엔 점점 더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 시간이, 경험이 쌓이면 판단의 기준이 좀 더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좀 더 확신이 가득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인지 헷갈리는 것만 더 늘어난다. 그래서 이젠, 이기는 게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땐 승부욕의 화신이었는데. 도덕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면서 지는 것도 싫어해서. 축구하다가 백태클로 반칙을 당해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서 바로 죽ㅃ…… 올바른데 승부욕이 지나쳐서 폭력을 사용한다,  말이 되는 이야기야?


라고 생각하며 여태까지 무슨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잔뜩, 썼다. 지웠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알차고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잔-뜩. 아, 솔직히 잔-뜩은 아니고. 그래도 꽤 여러 번 지웠다. 그동안 머릿속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손 끝에서 야물딱지게 타닥타닥 경쾌하게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되어서. 갈피를 못 잡고 변죽만 울리길래. 그래서 지웠다. 그리고 썼다. 이만큼을. 아무 내용 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 쓸모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이 문단에 이런 내용을 담고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쓰고 등등의 계획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기 싫어서. 내가 할 줄 아는 여러 재미 있는 놀이 중에 글, 쓰기에 머리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정확히 말하면 힘을 빼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힘이 들었으니까. 누구나 모두가 대체로 그러했겠지만. 올해만큼 ‘기생충’의 송강호의 대사가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적이, 없었다.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다, 뭐 이런 거 말이다. 그럼에도 올해 무언가 확실하게 배운 게 있다면, 이거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더 높은 확률로 안 된다. 다 착착착착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는 일은 거의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마라. 중요한 건 거기에서 어떻게 하느냐다. 니탓 남탓 너의탓 (결국 다 너의 잘못이다-)를 시전할 시간에 해결책을 만들어내느냐. 얼마만큼의 개선의, 돌파의 의지를 보이느냐가 관건이다. 어차피 어느 한 사람, 한 부분의 100% 잘못은 없다. 그래서 다음의 해결책을 찾으면, 고치고 수정하면 또 어찌어찌 이렇게도 결과가 나온다고? 하며 마무리된다.


그렇다. 이렇게 이 글도 마무리가 된다. 안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것 같아서. 타으닥타으닥타……으….닥. 난 아마도 새벽의 예술가는 될 수 없을 거야. 그렇지만 그냥 좀 더 성실한 글쟁이는 되고 싶다. 글쟁이, 글쟁이라. 글쟁이는 무엇인가. 아아. 그만. 이제 자야 할 시간이야. 


이런, 12월이라니. 라는 문장으로 어젯밤엔 라이브 방송을 했다. 금희 선배의 목소리로 읽힌 문장은, 살아있었다. 이런- 12월이라니. 이런 12월이라니! 어떤 무엇이 되어도 상관은 없지만, 결국에는 그래도 12월이니까- 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2020.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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