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라진 노래들에 대하여
이해되어버리고 말아서 슬픈 까닭
나의 멜론 플레이리스트엔 1000곡이 가득 채워져 있다. 리스트 최대치가 1000곡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 테지만 사실 내 리스트는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1000곡이 들어가 있는 기본 리스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최근에 나온 국내외 곡으로 업데이트된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서 듣다가 아, 좋다 마음에 든다 하는 곡들은 다른 리스트로 옮긴다. 그게 벌써 600곡이 넘었다. 그걸 언제 다 듣냐면, 그냥 오며 가며 셔플로 설정해 놓고 듣는다. 영상을 보는 일은 그래서 많지 않다. 노래 듣기도 바쁘니까.
괜한 욕심이다. 무엇에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일이 많지 않은 성격인데 음악에는 유독 그렇다.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음악인데 너무 좋으면 그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분하다. 분하다, 난 왜 몰랐지.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있는데. 있었는데 그동안 난 뭘 한 거냐고! 그게 음악이 좋아서인지 무언가를 알고 싶음에 대한 욕구인지 그저 소유욕인지 잘 구분도 안 되지만, 아무튼 그래서 괜한 욕심을 부려서 플레이리스트엔 그득그득 새로운 노래들로 채운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할 만한 새로운 노래들로.
그러다 생각했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이 듣고 싶다고. 이것도 정확히는,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의 요즘 노래가 듣고 싶다지만.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들을 그렇게 다시 찾아서 듣는 편이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새로운 노래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그것 듣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좋은 곡들은 좋지만 그것 말고. 그러니까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말고 ‘황금가면’ 같은, 내가 좋아했던 가수의 요즘 노래들이 듣고 싶은 거다.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나라고 생각했던 마이앤트메리가 지난해 새로운 앨범을 냈을 때, 그걸 마주했을 때의 그 기쁨처럼. 다들 뭐 하는 거지. 부지런히 일하라고. 음악을 만드세요. 지금의 음악으로 나와달란 말이에요, 좀! 이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그러다 다시, 생각했다. 아. 내가 대학생 때 좋아했던 사람들은, 내가 페스티벌에서 처음 마주했던 밴드들은 이제 다들 나이가 많아졌겠구나. 내가 벌써 10년, 20년의 나이를 더 먹었는데 그때도 어른이었던 그들은 지금 더 훨씬 더 어른이 되어버렸겠구나. 나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지금을 어느 순간 ‘따라가게’ 되고,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 그렇게 노래를 불러주던 사람들은 지금 더, 훨씬 더 고달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혹여 삶이 윤택해서 더 이상 치열하게 고민하고 마주하지 않는 이유라 해도, 그것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지금을 사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쉬운 듯 쉽지 않으니까.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면.
그래도 여전히, 듣고 싶다. 김동률의 지금이 좋았듯이. 언니네이발관의 지금도 이소라의 현재도 이적의 요즘도 다, 그냥 우리 같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아이유의 콘서트가 너무너무 가고 싶지만 이들의 노래가 나오면 그것만큼 좋을 거 같다. 아니야, 솔직히 아이유 콘서트가 좀 더 가고 싶긴 한데(…) 그래도 그 감흥만큼 짜릿하진 않아도 더 오래 플레이리스트엔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한 달의 한 번 플레이리스트 업데이트를 하며 반가운 이름들을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내고 기다리고 기대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죠?
만화가 도리야마 아키라가 세상을 떠났다. 국민학교 시절에 너무 재미있어서 와, 하고 봤던 <드래곤볼>이었는데. 스포츠 만화만 빌려주던 아빠의 눈을 피해 학교에서 친구들이 가져오면 몰래 봤던 만화. 손오공이 초사이어인3이 되었을 때랑 마인부우가 낮잠을 4초(!) 잤을 때, 배지터랑 손오공이 퓨전으로 하나가 됐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이제 진짜, 정말 모든 게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지금’의 손오공은 마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만화에선 그렇게 용신을 불러내서 되살리고 되살렸는데, 뭐랄까 이젠 정말 안녕의 순간이 찾아온 것 같았다.
나의 과거가 영원한 과거로 머물게 된다는 것이 그러한 일이 이제 조금 더 잦아진다는 게 요즘은 종종, 서글프다. 좋아하는 가수의 요즘 노래를 들을 수 없어도 언제고 지금이 될 수 있다는 희망만 있다면, 이라고 위로하는 것도 조금은.
2024. 03.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