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웨이 2주 차 기록
이번 주 금요일 저녁, 토요일 오후 내내 Dugnad 두그나드를 하면서 보냈다. 아이들 스케이트 클럽에서 기금 모음도 하고, 홍보도 하는 봉사활동이었다.
금요일 오후 4시 15분. 집 근처 쇼핑몰 2층에 도착했을 때는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리네아와 그녀의 아이 둘이 도착해 있었다. 화장실을 갔다가 부스 앞으로 갈까 하다가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는 분주한 모습에 일단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 일찍 왔네!" "나도 막 도착했어." 그리고 늘 그렇듯 말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우산과 가방을 기둥 뒤에 잠시 내려놓고, 리네아가 가지고 온 것들. 특히 로또를 산 사람들이 당첨되었을 때 고를 수 있는 선물들이 매력적이게 보이도록 전시했다. 10분쯤 지나니 집에 있던 아이들이 도착했다. 스케이트 트레이닝 복이나 반짝이는 예쁜 티셔츠를 입고 오라고 했더니 다행히 큰 아이가 스케이트용 레깅스를 입고 나타났다. 클럽 이름이 적힌 트레이닝용 상의를 하나 집어 들어서 입혔다.
"자, 이제 홍보를 하렴"
둘째는 배가 고프다며 입이 튀어나왔고, 첫째는 시큰둥하니 서서 로또 종이만 팔락 팔락 거렸다. 둘째에겐 먹다가 남겨두었던 내 점심 도시락을 건네주었고, 첫째에겐 리네아 아이들을 좀 도와주라는 신호를 주었다. 리네아 아이들은 어려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로또 사실래요? 100 크로네예요!!"를 외쳤다. 어릴수록 성공률이 높다. 천진난만하게 돈을 요구한다. 목소리며 눈빛까지 귀여움을 장착하고 있으니 나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다. 동네 어른들이며, 어린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쇼핑을 온 사람들은 선뜻 로또를 샀다. 끝자리가 33, 66, 99이면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성공률은 낮았다.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로또를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클럽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답인사를 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우리 클럽에서 스케이트를 탔다고 했고, 어떤 부모들은 몇 살부터 스케이트 스쿨을 다닐 수 있냐며 우리에겐 꽤나 고마운 질문을 해 주었다.
한 시간 남짓 서 있었는데 몇 십 개의 로또를 팔았다. 아이들에게는 홍보를 권했지만 나는 서서 웃는 것 말고 그다지 한 것이 없었다. 괜히 선물들을 재진열하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금요일 오후의 피곤함이 핑계였다. 컨디션이 좋아도 낯선 이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에서도 그런데 노르웨이에서는 오죽할까. 소통이 되는 기쁨을 90만큼 누려도 소통이 되지 않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 10이 여전히 따끔하고 거칠다. 노르웨이어 세상에 나를 던져 넣기로 했지만 여전히 나를 끔찍하게 보호하며 지내고 있다. 상처받지 말자.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일은 자기 보호를 하기 힘들다. 자기 회의에 수없이 빠지고 자기 파괴로 이어지지만 다시 스스로 일어나 그 늪을 헤집고 나와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즐기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노르웨이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이 그랬다.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노르웨이어를 배우는 나는 아닌 것 같다. 재미가 좀 없다.
나에게 재미있는 것은, 정신없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은 -한국어로- 글쓰기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일이다. 글쓰기는 나의 혼을 빼놓은 많은 훼방거리들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도록 도와준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하는 글에 잘 맞춰 써냈을 때의 만족감은 크다. 오늘, 일요일은 그 만족감을 느끼기로 마음을 먹은 날이다.
금요일도 그렇고, 토요일도 지역 축제에 참여해서 봉사활동을 했으니 의미 있는 일을 했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한 자기 돌봄 욕구가 계속 채워지지 않은 상태로 일요일을 맞은 나는 감정적으로 지쳐 있었다. 금요일에 운동을 하고, 토요일엔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남편에게 일요일에는 나도 꼭 글을 쓰겠다고 말해둔 상태였다. 당당하게 선언했다.
기다리던 일요일, 푹 자고 일어났다. 컨디션도 좋고, 글쓰기에 쏟을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를 갖췄다. 스트레칭을 하고, 책상 앞에 바로 앉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남편을 도와서 아침을 준비했다. 나와 남편은 호밀빵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루콜라와 얇게 썬 사과를 올려 먹었다. 맛있어서 흥겨움이 어깨끝으로 새어나왔다. 아이들은 남편이 해 준 볶음밥을 먹었다. 카페인을 충전할 타이밍이다. 내가 선택한 커피는 멜라지오였다. 오늘은 글을 쓸 거니까 좀 진한향의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출발이 좋은 일요일이야.
커피잔에 커피가 남았는데 남편이 일어나 식기 세척기에 그릇들을 헹궈 넣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스케이트장까지 걸어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아침 산책. 내가 좋아하는 아침 산책을 제안했다.
"자기도 같이 갈래?"
"어? 나 글 써야 하는데... 그래, 그러자. 갔다 와서 써야겠다."
오전 10시. 아이들을 스케이트 코스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1층 거실과 작은 방, 가데로베(옷방과 실내 창고 비슷한 것)를 비우고 정리했다. 동시에 밀린 빨래를 두 번 연속 돌리고 널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니 시간은 이미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일부터 실내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집 정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배가 고팠다. 점심은 라면, 짜파게티, 비빔면까지 집에 있는 면류들을 다 꺼내서 끓여 먹기로 했다.
이제 틈이 난 건가? 컴퓨터를 살짝 켰더니 공사에 필요한 문을 주문 넣을 최고의 타이밍이 되었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문을 골랐다. 문 크기와 높이를 정하기 위해 줄자를 들고 일층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했다. 시간이 없다며 빨리 메일을 보내라는 남편의 독촉을 받으며 문 디자인 선택 완료, 견적 메일을 보냈다. 남편은 둘째 수영 코스를 보내기 위해 일어섰다. 나는 공사를 맡아준 오스카에게 내일 계획에 대해서 문자를 보내고 9월 명문장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의 일을 시작해야겠군. 음악을 켜고 일력을 한 장씩 넘겼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기분 좋게 저녁에는 김밥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김바압!! 맛있겠다!!!"
깜박 잊고 있었던 것 브런치 작가 모임 톡방에 글쓰기 선언을 위한 투표 공지를 남기고, 다시 명문장 타이핑을 시작했다. 수영 코스를 간 둘째 픽업시간이 됐다. 남편 뒤를 이어 내가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김밥을 다 말고, 자르는 타이밍. 첫째 하나, 나 하나 먹다 보니 남편과 둘째가 집에 돌아왔다. 김밥과 일본 된장국으로 신나게 저녁을 먹었다. 부엌을 치우고 앉았다. 저녁 7시다.
오후 3시 이후로 체력이 급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책상 앞에 앉았다. 저녁 7시, 이미 일요일 밤이다. 감자칩을 집어서 우걱우걱 입에 넣는다.
훼방꾼은 약속을 깨뜨리고 계획을 엉망으로 망쳐놓는다.
훼방꾼은 당신의 사정 따위는 무시한다.
훼방꾼은 당신의 시간과 돈을 잡아먹는다.
훼방꾼은 자기 스케줄만 중요하다. 남들 스케줄 따위는 나 몰라라 한다.
훼방꾼은 자신이 훼방꾼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 <아티스트 웨이> 96쪽 - 99쪽
나의 훼방꾼은 실체가 없다. 잡히지 않는 안개 같다. 매일, 매주 그렇다. 무엇을 스스로 선택했고, 무엇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