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CCP 확산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건축물과 관련된 시설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는 HACCP 공장을 만드는데 비용이 가장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HACCP 공장을 짓거나 개보수할 때 법적 시설기준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자 대비 효과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서 'HACCP 공장'이라는 말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듯이 HACCP 인증 요건인 선행요건관리 중에서 시설기준에 적합한 건축물이라는 뜻이므로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 ‘HACCP 대응 공장’이라고 명칭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공장이든 식당이든 식품 사업장은 본격적으로 건축 설계를 하기 전에 생산·조리하려는 식품의 종류·특징, 가공·조리 공정 및 기계의 종류·특성, 종사자의 성별·나이 및 규모, 향후의 증축 여부 또는 신제품 계획 등을 다 조사하여 준비해야 한다.
식품업체의 많은 사람들은 설계는 건축사나 건설업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건축사나 건축 관계자가 식품의 특성, 공정의 특성, 기계의 특성 등을 올바르게 이해하거나 해석하기는 쉽지 않아서 식품 사업장이 갖는 이들 특성을 건물에 정확하게 반영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건축사나 건설업체 관계자들에게 식품 업체가 갖는 각종 특성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건축물에 반영할 것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설계가 잘못되면 식품을 가공, 조리하는 것이 불편해지고, 건축비 지출이 비효율적으로 될 수 있다. 심지어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생기거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공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건축물의 설계에 반드시 식품 생산 활동을 하는 사업장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설계는 크게 기본계획, 개념설계, 실시설계로 나눌 수 있다. HACCP 인증에도 도움되고, 현장관리에도 실용적인 사업장을 원하다면 개념설계를 꼭 챙기기 바란다. 개념설계는 기본 계획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시설계보다는 간단한 수준이다. 개념설계를 할 때는 식품, 공정, 장비를 잘 아는 직원이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여건이 가능하면 식품위생법 등 관련 법규의 시설기준, HACCP 고시의 선행요건관리기준, HACCP관리기준을 모두 잘 아는 전문가가 참여하면 더 좋다. 식품, 공정, 장비, 건축 등 다방면을 어우를 수 있는 전문가의 참여는 개념설계의 완성도, 효용성 및 경제성을 더 높일 수 있다.
개념설계를 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기능적 측면에서 사업장 공간을 나누는 것이다. 사업장을 종사자 편의시설, 관리시설(사무실 등), 생산·조리시설, 보관시설 등과 같이 공간을 기능적으로 크게 분류하고, 그 각각을 또다시 하부 기능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예로써 보관시설을 종류별로 나눠보면 일반보관소(상온), 냉장보관소, 냉동보관소, 저온보관소, 화학물질 보관소, 공정품 보관소, 표장재 보관소(내포장/외포장으로 구분), 제품 보관소, 작업장 내 임시 보관소, 작업장 내 위해물질 보관소, 작업장 내 기구·도구 등의 보관소, 기계장비 보관소, 폐기물 보관소, 반품·폐품 보관소, 폐수처리 관련 물품 보관소 등이 나오는 것처럼 의외로 많다.
공간을 기능적으로 세분류한 뒤에는 건축할 면적에 이들 기능 공간을 앉히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전체 건축 부지에 가장 큰 단위가 되는 공장동, 부속건물, 창고 등을 적절히 배치한다. 이때 향후 증축 방향과 차량의 동선 공간을 까먹지 말고 챙겨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업장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류했던 기능 공간을 배치한다. 흔히 가공실, 조리실, 포장실 등으로 일컫는 작업 공간을 이때 적절하게 배치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배치한 공간에 생산·조리에 필요한 각각의 기능적 공간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통해서 마련하는 것이 평면도이다.
평면도를 완성하면 생산 또는 조리에 필요한 각종 기계, 가구 등을 배치한다. 평면도에 기계 등의 배치를 한 것을 통상 ‘레이아웃’이라고 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맨 처음 작성했던 평면도를 수정하게 된다. 공간과 기계를 조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수정할 부분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이아웃을 어느 정도 완성하면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품 생산·조리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구역 설정을 한다. 구역은 청결구역, 준청결구역, 일반구역 세 가지를 말한다.
HACCP 대응 공장을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청결구역, 준청결구역, 일반구역 을 정하고 나면 개념설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동선 분석’을 해야 한다. 동선(종사자 동선, 물류동선 등) 분석은 식품안전에 중요한 ‘오염’, ‘교차오염’을 최소화하는 것이며, 현장에서의 생산 관리를 높이는 것이다. 종사자, 원부자재 등 각종 동선을 분석하고, 필요하면 레이아웃을 수정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동선 분석, 레이아웃 수정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여기에 사업장의 각종 특성, 확장성 등을 반영하고, 법적으로 정해진 소방, 산업안전, 환경 등과 관련된 내용을 반영하면 레이아웃은 또 추가 변경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소방 관련 시설기준은 식품안전 측면에서 분리하였던 청결구역, 일반구역은 물론 종사자 등의 동선과 충돌이 일어나 그동안 설계하였던 구역, 동선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경우도 있다.
개념설계가 어느 정도 완료되면 실시설계 때 반영해야 할 내용을 설계 지침에 담아야 한다. 설계 지침에 담아야 내용은 법적 시설기준, 선행요건관리기준에서 규정하는 배관, 급배기, 온도·습도, 조명, 재질 등이며, 필요에 따라서 폐수, 친환경(저에너지, 저탄소 등) 사항도 추가할 수 있다. 혹시 설계 지침에 반영할 사항이 일부 누락되더라도 실시 설계 단계나 시공 단계에서 추가 보완, 수정할 기회가 있으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따라서 개념설계 때는 식품, 공정, 장비 등의 특성에 따른 구역 및 동선 설정에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개념설계의 목적과 효과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안전한 환경 및 시설 확보
두 번째,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프로세스 확보
세 번째, 원료 처리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의 생산 효율성 확보
네 번째, 향후 증축 및 확장성 확보
다섯 번째, 종사자 복지 및 근로 환경 향상
마지막, 효과적이고 편리한 세척·소독 구현
이러한 개념설계의 효과는 동선 설계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동선을 잘 분석하여 건물을 지으면 종사자의 불필요한 이동거리 감소, 업무 이동시간 최소화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 절감,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다. 심지어 에너지까지 줄이는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장 건물의 개보수, 증축 또는 신축 때 다른 것은 몰라도 개념설계만큼은 시간을 갖고 충분히 실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