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하기
지금까지 (1),(2)를 거쳐오면서 mission과 vision에 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아주아주) 간단히 그림으로 그려보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좌측에 현재의 상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측에 꿈꾸고 바라는 미래의 상태, 곧 vision이 있습니다. 현재의 상태에서 미래의 상태로 가는 방법은 성공적인 mission의 수행입니다. 이 mission은 쪼개어져 각 조직과 개개인의 업무로 나뉘어지겠죠.
이 도식은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적용해보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vision은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그것은 결국 vision을 주창하는 사람, 리더만의 생각인데, mission은 리더가 아닌 다른 사람이 수행한다는 것이지요. 즉 주체가 다르다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말을 물가에 데려놔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다는 고사성어처럼 사람도 억지로 무언가를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설득할 방법이 필요하죠. 성공적인 설득을 통해 mission에 대한 마음을 ‘억지스러움’에서 ‘자연스러움’ 으로 바꾸어 놓을 수록, 그래서 mission과 vision에 구성원이 점점 일치감을 느낄 수록 업무에 대한 몰입도는 올라가고 성능은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은 vision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겠죠.
저는 이 일련의 설득 과정을 motivation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통제의 한계와 돌파구
motivation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조직을 하나 상상해봅시다. 이 조직의 구성원은 업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의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의미도 없다고 느낄 뿐더러, 재미도 느끼지 못하지요. 주어진 업무 또한 최선을 다해서 뒤로 미루려하거나, 아예 안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면 이제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현대 사회는 구성원을 숫자로 통제하여 motivation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정량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월단위 주단위로 나눕니다. 매 주마다 리뷰 회의 자리를 가지며, 기준이 되는 숫자 대비 달성률이 어느 정도나 되었는지 따집니다. 기다란 체크리스트를 통해 진척현황을 하나씩 점검합니다.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고, 자리에서 실제 앉아있는 시간을 센서로 측정합니다. 작성한 보고서의 숫자, 페이지의 숫자를 셉니다. 상상만 해도 끔직하게 들리지만, 이 ‘통제’는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억지로 업무를 하기는 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원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마도 이 구성원에게 부여하고 정의된 업무 딱 그만큼까지 일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일은 이루어져 있고, 조직은 느리지만 확실히 vision을 향해 앞으로 나갈테니까요.
그런데 숫자를 통한 정량적인 통제 방식은 점점 한계에 도달합니다. 굳이 야근을 합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를 씁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실적은 정량적인 지표에 따라 정해진 산식에 의해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산식에 의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숫자를 달성할 수 밖에 없지요. 아니 더 높은 숫자'만' 필요로 합니다. 단지 통제에 답변하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 증명만을 목적으로 한 의미 없는 업무가 양산되지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조직이 해야할 업무를 진정 수행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코브라 효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다음의 일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도의 어느 마을에서 코브라가 창궐하였습니다. 코브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역 정부는 코브라를 잡을 때마다 높은 상금을 지급하기로 합니다. 코브라는 계속 바쳐졌고, 상금 또한 계속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브라의 포획 숫자가 점점 늘어났음에도, 코브라로 인한 마을의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상금을 위해 사람들이 양식장을 만들어 코브라를 길러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코브라 효과”는 금전적 인센티브의 한계를 지적할 때 주로 언급되는 내용입니다만, 저는 실제 업무와 목표가 분리되었을 때 업무가 어떻게 공회전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보입니다. 코브라 문제 해결을 위해 코브라 포획 숫자를 목표로 잡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인센티브 또한 제공하였습니다. 숫자로 쓰여진 포획 목표는 달성했고 인센티브도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최초에 제기되었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지요.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변질되어 버린 것을 감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장치가 동원되지요. 코브라 예시를 계속 이어나가 보자면, 우선 코브라가 실제 야생의 코브라를 포획한 것이 맞는지 어떤 검증을 거쳐야겠죠. 야생의 코브라와 양식장의 코브라를 구분해낼 수 있는 전문가와 계약합니다. 전문가에게 초보자도 코브라를 구별할 수 있도록 연구용역과 매뉴얼을 개발하게 합니다. 또 실제로 사냥꾼이 코브라를 잡을 만한 실력이 있었던게 맞는지 과거 사냥 경력을 같이 제출하게 합니다. 지역 공무원으로 하여금 실제 코브라 사냥을 지켜보게끔 합니다. 지역 공무원과 코브라 사냥꾼 간에 유착관계가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겠네요. 장치는 점점 늘어나고, 행정적 비용도 늘어갑니다. 최초에 제기되었던 문제가 추가되는 비용만큼 잘 해결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한번 실제로 일하는 사람 A의 시점이 되어 봅시다. A는 지역사회의 골칫거리인 코브라를 줄인다는 말을 듣고 업무에 지원했건만, 실제로 하는 일은 테이블에 앉아서 수많은 코브라 용역업체와 자질구레한 서류 인증 작업을 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상부로부터 코브라 실적 압박까지 받습니다. 옆 부서의 관리 구역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연말 평가 등이 낮아질 것이라는 내용을 통보받게 됩니다. 그리고 코브라를 더 잘 잡을 수 있는 업무 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게 됩니다. 지시를 받은 A가 착수하게 될 일은 자신이 아는 코브라 사냥꾼에게 연락해서 계획서를 외주 주는 것이죠. 어떤 날은 소문을 들은 어떤 사냥꾼이 목표를 쉽게 달성하는 쉬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은밀한 연락을 주기도 합니다. A는 점점 업무가 신나지 않고 재미없어져 갑니다. 이 자리가 왜 공석이었는지 점점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쓸모 없고 가치를 더 하지 못하는 일에 스스로가 소모되어 간다는 감각이 듭니다.
이제 지역 정부의 시점이 되어 봅시다. 지역의 문제가 되는 코브라 퇴치를 위해 조직도 만들고 예산도 배정했습니다. 일부 운영상에 문제가 있어서 코브라 퇴치의 달성률이 지지부진하다기에 조직도 더 키우고, 운영 가이드라인도 확보했으며, 예산도 대폭 확충했습니다. 그런데도 담당 부서의 사기는 형편없고, 달성률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으며, 양식한 코브라를 속여 제출하는 케이스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저는 조직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통제라는 Tool만 오롯이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비교입니다만, 만약 코브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로 담당 조직을 구성했다면 분명 상황은 달랐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제 작위적으로 조직을 구성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그와 유사하거나 적어도 비슷한 방향으로라도 조직 구성원을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1)목표를 명확히 하고, 2) 목표와 업무를 일치시키고, 3) 목표/업무와 구성원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할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먼저고, 필요한 경우 업무의 지침이나 각종 지원 등의 사항은 그 다음입니다. 할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이것이 motivation입니다.
이전의 motivation 이론들
motivation, 다시 말해 동기와 동기부여에 관한 이론은 세상에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매슬로우의 이론과 맥그리거의 x-y 이론이 떠오르네요. HR업무를 하게되면, 동기부여라는 주제는 피할 수 없는지라 저도 따로 전공서적을 구해가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훌륭한 이론들이었습니다. 세상에 널리 인정받았고 지금도 많은 조직이 조직 구성원들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데 뒷받침되고 있죠. 그런데 저는 vision과 mission을 설득하고 구성원이 그것과 일치감을 갖기 위해서는 이 이론들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슬로우의 이론 같은 경우에는 피라미드 형식입니다. 맨 아래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바로 윗단계의 욕구가 생긴다는 이론이지요. 저는 욕구에 층위와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니와, 해당 피라미드의 단계는 다분히 매슬로우와 매슬로우가 소속된 공동체의 가치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보편적일 수 없는 것이죠. 꼭 안전의 욕구충족이 선행되어야 자아실현을 해보겠다는 마음이 들까요? 또 자아실현이란게 정말 최고단계의 욕구일까요? 우리는 이 욕구를 뒤바꿔서 사는 사람의 예시를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x-y 이론은 욕구충족에 있어서 위생적 요인이 있으며 각각은 다르게 작용한다는 내용이죠. 이론 자체는 납득할 수 있고, 아이디어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론 전반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시선의 방향과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 이론을 읽을 때마다 자꾸 수족관 물고기가 떠오릅니다.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먹이를 지급하고 환경을 조성해야 물고기가 잘 일할지 아이디어를 주는 내용 같아요.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요. 안과 밖의 철저한 분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싫습니다.
기타 다른 이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기부여를 하는 자와 동기부여를 받는 자가 모두 자원, 통제 대상으로만 관계할 뿐, 대화와 설득 같은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론 각각의 작동 메커니즘은 조금씩 달라도 전달받는 느낌은 하나같이 기계적이고 차가운 감각입니다.
이론에서 느껴지는 그 차갑고 서늘한 감각을 저는 이해합니다. 해당 이론들은 모두 커다란 조직을 이끄는 리더 또는 해당 조직의 HR(Human Resource!) 리더를 위해 고안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던바의 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한 번에 알고 지내는 인원의 최대 수는 150명 정도라는 이론이죠. 그 이상의 인원을 컨트롤하는데는 인간적인 매력이 아니라 제도 등등의 도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도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기능적이고 도구적이고, 원칙적이며, 그렇기에 차가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득 과정에 있어서의 문제
‘나그네와 석공’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그저 벽돌을 하나하나 쌓기만 할 뿐인 일이 아닌 아름다운 집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즐겁고 보람차고, 결과적으로 더 단단한 집을 만들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감명받은 아파트 시공업체의 현장 리더인 B씨는 아침에 같이 일하는 현장 분들을 불러모아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도 집을 지을 때 그와 같은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B씨의 그 마음은 현장 분들에게 닿았을까요?
아마 유감스럽게도 아니었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현장 분들이 짓고 있는 것이 자신 또는 가족의 집인 것도 아닌데다, 이 일을 훌륭히 한다고 자신에게 특별히 추가적인 금전을 주는 식의 계약도 아니었을 뿐더러, 자신의 일거리와 보상이 평판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닌 업계이니까요. 오히려 반감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돈을 아끼고 짜게 구는 곳에서 저런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 하면서 말입니다. 요즘 현장에 많이 보이는 외국인노동자 분들이라면 어땠을까요? 이야기는 더 공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 분들은 본인과 가족을 위해 빨리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한국에 온 거의 유일한 목표였을 테니까요.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요? B씨의 발언은 그저 자신의 감동을 전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데 지난 주말에 본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이야기하는 수준 정도의 언사일 뿐입니다. 그런 정도로는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기는 커녕, 감동이 공유되는 것조차 일어나기 힘듭니다. B씨가 본인의 인생을 바꿀만한 감동을 얻었던들,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이며, 전달이 되었다 친들 그게 똑같은 행동의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은 또 다시 다른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상세하게 들어가봅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에서 영혼 삼분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의 영혼을 세 가지의 기능으로 나누고,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 나아가 국가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펴 나가지요. 세 가지의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성 (Logistikon)
욕구 (Epithymtikon)
기개 (Thymoeides)
이에 따르면 위 현장 리더 B씨는 당위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이는 플라톤에 구분에 의하면 세 영혼 중 오직 이성에 대하여만 설득하는 실수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기에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면 설득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오직 이성에만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다른 측면에 대해서도 면밀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성에만 호소한다면, 당신이 하는 말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이는데 충분하지 못한 겁니다. 추가적인 이유를 필요로 하지요.
위 플라톤에 따르자면, 결국 설득을 위해서는 욕구적인 측면과 기개적인 측면에도 동시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겠네요.
다소 거칠게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겠습니다.
(이성) 이 일은 옳은 일이다.
+ 그리고
(욕구) 이 일을 하면 너에게 이득이다.
+ 그리고
(기개) 이 일을 하는 것은 너의 의무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이 본인의 저서에 남긴 아래의 명언도 결국 이에 대한 말입니다.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성보다 이익에 호소해야 한다.
(if you persuade others, you must appeal to interest rather than intellect.)
저는 여기에서 플라톤의 영혼삼분설을 상세히 설명하거나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에 해당 이론을 힌트 삼아서 인간이 움직이는 이유를 종류별로 나누고, 외부에서는 어떤 것으로 그 이유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Motivation 스펙트럼’ 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움직이는데 있어서 오직 순수한 하나의 이유로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여러 이유가 서로서로 꼬리를 물고 돌아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