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Vision

일의 의미

by 주홍은하수

장면1)

블라인드를 포함, 회사 관련한 여러 앱과 게시판의 글을 보면 꼭 나오는 단어가 바로 Vision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시처럼 주로 쓰이지요.


'이 회사는 비전이 없음'

'리더가 비전을 명료하게 제시하지 못함'


장면2)

조직마다 이른바 ‘Vision statement’ 란게 있습니다. 주로 큰 폰트와 함께 잘 보이는 벽에 붙어있죠. 제가 그 동안 보았던 수많은 Vision Statement는 대개 두 가지 형태 중 하나였습니다.

1) 첫 눈에는 뭔가 엄청 그럴 듯 해보이지만, 나와 나의 일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 문장.

2) 정량적인 목표 (e.g 세계 1위, 매출 1조 등등)


장면3)

어느 날 부장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김대리, 블라인드에서 우리 회사에 Vision이 없다고 이야기하는게 대체 무슨 말이야? 저기 벽에 떡하니 보라고 붙여놓았구만!”


Vision이라고 하는 단어는 다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같은 단어지만 서로 다른 대상을 지시하고 있고, 그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위의 장면들처럼 오해에 빠뜨리거든요. 저는 이번에도 Vision의 정확한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사전이나 어원, 또는 저명한 논문의 의견을 모아서 정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혼란스러운 현상을 빠르게 수습할 제안을 하려 합니다.


Vision이라고 하는 단어는 다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같은 단어지만 서로 다른 대상을 지시하고 있고, 그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돕지 못하고 위의 장면들처럼 오해에 빠뜨리거든요. 저는 이번에도 Vision의 정확한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사전이나 어원, 또는 저명한 논문의 의견을 모아서 정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혼란스러운 현상을 빠르게 수습할 제안을 하려 합니다.


우리의 Vision Statement 검토하기

저는 조직에 하나씩은 있는 Vision Statement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생각합니다. Vision을 통해 조직을 정렬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았습니다만, 올바르게 쓰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아니면 마침내 Vision Statement란 것을 무시해버리는 형태로 말이지요. 그런데 올바르게 쓰인 것과 올바르게 쓰이지 않은 것을 구별할 길이 우리에게는 없네요.

그래서 저는 미약하게나마 간단한 테스트를 제안하려합니다. 모름지기 Vision Statement라면 적어도 아래의 3가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스트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게 저거라고?

저것에 정말 진심이야?

니가 뭔데?


테스트1. 우리가 하는게 결국 저거라고?

제가 알고 있는 Vision에 관련된 명언 중 가장 아름다운 명언은 다음의 것입니다.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그러면 스스로 배를 만드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


잘 설계된 Vision이 몰입과 주도성을 준다는 말입니다. 흔히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베리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있고, 특히 그가 쓴 최고의 소설 중 하나인 ‘어린 왕자’가 그 출처라고도 알려져 있는 위 말은, 사실 어린 왕자에 나오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생텍쥐베리가 쓴 다른 소설에 이와 유사한 글귀(그러니까 위와 똑같지 않은)가 있다1)고는 합니다. 그렇다면 저 명언은 출전이 와전되었거나 이름모를 어느 분께서 떠올린 문구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세계적인 소설가의 이름을 거짓 출처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게 누구였든간에 저 글귀를 처음 생각해낸 사람A(생떽쥐페리이든 누구든)는 제가 보기에 Vision에 대해 하나는 알고 하나는 몰랐습니다.


알았던 것 하나는 바로 ‘바다’에 대한 동경을 ‘배’ 만드는 이에게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Vision은 Mission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Vision은 ‘주어진 Mission을 꾸준히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 벌어지는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결과 / 변화’를 표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사소한 업무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단순히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큰 과정의 일부분으로 느끼도록 도와줍니다. 그리하여 지겨울 수 있는 업무들에 의미를 찾고, 노력을 투입하여 몰입을 경험하게 하지요.


RPG게임 주인공 파티가 마을 앞 슬라임 사냥을 꾸준히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속의 동굴 던전의 도적을 물리치는 역할을 받을 수 있겠죠. 그러다보면 언젠가 주인공이 사모하는 공주를 납치한 괴물을 마주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 파티의 Vision은 바로 ‘공주의 구출’입니다. 고층건물의 외벽을 전문적으로 닦는 업체가 있다고 합시다. 이 업체가 Mission인 유리창 닦기를 꾸준히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건물에 방문하거나 그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깔끔한 기분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다른 건물주들이 계약을 하기를 원할 수도 있겠지요. 이를 충분히 반복하다보면 어쩌면 세계적인 고층 전문업체가 될 겁니다. 이 업체의 Vision은 무엇일까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외벽청소 업체’ 가 될 겁니다.


사람A가 몰랐던 것 하나는 바로 Vision이 Mission과 유관하기만 해서는 안되며, 거리감이 가까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 만드는 사람에게 바다에 대한 동경을 주어야 한다는 말, 듣기에는 좋아보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소에 실제로 가본 적은 없는게 분명합니다. 하루종일 쇠를 자르고 용접하고 지게차가 시끄러운 알람소리를 내며 자재를 나르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개인들에게 바다에 대한 동경 운운하는 말은 현실과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오히려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말, 허망한 뜬구름 잡는 소리로 비웃음 사기 좋지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우유 상인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우유를 한 통 팔러가는 길에서 우유를 높은 가격에 팔고 팔아서 병아리를 사고 병아리를 닭으로 만들어 팔아서 드레스를 산 다음 그 드레스로 무도회에 가서 멋진 왕자님을 만나는 상상을 하다가 그만 넘어져서 우유를 엎지르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꿈깨라는 교훈을 가진 이 이야기에 대해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우유 상인 본인이 장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야망은 얼마든지 크게 꾸어도 좋고, 크면 클수록 좋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나는 우유를 팔아서 왕자님과 결혼하겠으니 그런 나를 도와라!” 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좀 다르지요. 가야할 길이 너무 아득하고 현실성이 없어보이니까요. 이처럼 Mission과 거리가 먼 Vision은 이렇게 인식됩니다. “멋지지만 쓸모 없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큰 회사들의 Vision Statement를 보면 다소 광의적이고 거대한 담론이 반영된, 또 당위적이면서도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그런 단어들이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거대한 조직의 Vision이 거대한 것은 사실 당연합니다.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니 세상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차원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소속한 많은 인원들의 다양한 업무들을 한 두개의 문장으로 포섭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다소 추상적으로 쓰여질 수 밖에 없지요. 그 근본적인 성격과 추상성이라는 특성이 안타깝게도 오히려 업무와 맞닿아 있는 현실과의 연관성을 떨어지게 만들고 Vision이 있어도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위 조직 차원의 Vision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업무와 가장 맞닿아 있는 조직이야말로 Vision이 필요합니다. 본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 직접적으로 밝힐 수 있으니까요. 그것을 인식하고 Vision을 만드는 경우를 주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동안 보기에 작은 단위의 Vision 작성에서는 종종 배율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번째는 우주망원경의 함정입니다. 너무 거대한 Vision을 가져옵니다. 살면서 겪어온 Vision Statement는 모두 거대한 조직의 것이었고 그들이 모두 추상적이었던 까닭에 Vision이란 모름지기 추상적이어야만 했는 줄 알았던 인식입니다. 그래서 하위 조직의 Vision 마저도 추상적인 단어를 늘어놓게 되고 여전히 현실과 연관성을 찾기 어렵도록 합니다. 좌절이 반복되는 것이죠. 두번째는 전자현미경의 함정입니다. 너무 작은 목표를 가지고 옵니다. 목표 위주로만 미래를 계획하던 버릇 때문에 Vision 또한 자그맣고 정량적인 목표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Mission과 Vision이 의미상 무슨 차이가 있는지 혼란스럽게 할 뿐더러, 나아가 우리가 Vision에게 얻고자 하는 내용 - ‘일의 의미’와는 더 멀어지게 됩니다. 저희가 필요한 것은 우주망원경도 아니고 전자현미경도 아닌 눈 앞의 글씨를 읽을 안경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앞서 말했던 RPG 주인공 파티가 Vision을 정한다고 합시다. Vision이 ‘세계 평화’ 라면 어떨까요? 조금 뜬금 없습니다. 세계란 어디서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이고 평화란 도대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고작 4~6명 남짓의 용사 일행이 할 수는 있는 것일까요? 머리에 혼란이 늘어만 갑니다. 역시 방금의 Vision은 우리가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 같으니 ‘올해 안에 슬라임 100마리 잡기’라고 Vision을 정했다고 합시다. 이번엔 뭘 해야하는지는 확실해졌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슬라임을 100마리 잡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우리는 왜 100마리나 그것도 올해 슬라임을 잡아야 하는 걸까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흥미롭지 않은 반복 작업 예고에 마음만 심란해집니다. Vision을 ‘옆 나라 마왕성에 있는 공주 구하기’ 로 정한다 합시다. 지금 상태에서는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그렇게 막연하지는 않습니다. 동의하기 어렵지 않고 의미가 없는 이야기도 아니구요. 그리고 앞에 있는 슬라임을 잡는 것 또한 무의미한 작업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작업이 됩니다. 슬라임을 잡아서 - 그 돈을 벌어 고급 장비를 맞추거나, 명성을 늘리거나, 전투 기술의 경험을 쌓거나 해서 - 결국에는 공주를 구출하는 것이죠!


테스트2. 정말 그게 진심이야?

온갖 노력을 통해서 적절한 거리감을 갖춘 Vision을 하나 만들었다고 합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Vision을 세웠다면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죠. 대부분 앞서 말했듯 어딘가의 벽에 붙여놓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Vision 달성이 반드시 연간목표 또는 장기목표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Vision은 진실성을 의심받습니다. 여전히 빛이 아무리 좋아도 개살구일 뿐이라고 느끼는 것이죠.


인간존중을 하겠다는 Vision을 가진 회사가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조직장의 평가 사항에 인간 존중에 관한 내용이 없다면, 또는 인간존중이 표현된 제도가 회사 내에 없다면 그 Vision은 눈속임입니다. ‘세계 속에 우뚝 솟은 Global 도시’가 되자는 Vision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있다고 칩시다. 만약 그 지자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연례 축제에 글로벌 관련 내용이 없거나 해외 홍보가 없거나, 외국어로 씌여진 팜플렛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Vision의 단어들이 멋진 허울로만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성이 담겨있지 않은 허울을 누가 존중하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Vision을 어떻게 목표로 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상태, 종국적인 결과라 그것을 어떻게 목표화 하냐면서요. 하지만 그것은 추구하는 목적과 측정대상을 동일시하는데서 오는 오류입니다. 그 둘은 사실 다릅니다. 구글에서 사용하는 GSM 프레임워크는2) 목적과 측정대상을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G(Goal) : 원하는 최종 결과입니다. 측정을 통해 알고 싶은 내용을 고차원의 어휘로 표현하되 특정한 측정 방식을 명시해서는 안됩니다.
S(Signal) : 원하는 최종 결과를 이루었는지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측정하고 싶지만, 신호 자체는 측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M(Metric) : 우리가 실제로 측정하는 대상입니다. 이상적이지는 않으나 충분히 가깝다고 믿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건물 외벽청소 업체’ 라는 Vision을 떠올려봅시다. 이 Vision 자체를 그대로 목표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하고 아주 멀어보여서 막막한 기분이 들게됩니다. 하지만 아래처럼 Signal과 Metric으로 쪼개어 생각하면 조금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Goal :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외벽청소 업체

Signal : 높은 인지도, 높은 브랜드 가치, 구성원들의 높은 자부심, 외부에서 따라하지 못하는 기술력

Metric : 해외에서 실제 수행 중인 프로젝트 수,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 비율, 해외에서의 문의 및 인터뷰 요청 수, 세계 외벽업체 순위, 해외 IP의 회사 홈페이지 트래픽, 관리대상 중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건물들의 리스트


이 중 Metric에서 보이는 구체적인 수치를 확보하고 실현하는 것이 바로 Mission이 될겁니다. 이것이 Vision에서 시작해서 Mission으로 내려가는 Top-down 방식입니다. Mission을 훌륭히 수행하면 달성하는게 Vision이고, Vision의 Metric을 달성하는 것이 Mission입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의 꼬리를 물면서 돌고 도는 것입니다. 둘이 서로 강하게 꼬리를 물수록 업무의 일치감이 높아집니다.


HR 또는 조직 생산성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OKR이라고 하는 목표 설정 방식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리콘밸리 여기저기에서 효과적이었다는 것으로 유명하고 국내에도 다양한 서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OKR은 Object 및 Key Result로 나뉘어있구요, 또 이들의 두문자를 따서 OKR이라고 부릅니다. OKR이 Top-down 방식의 목표 설정 방법입니다. Object는 목표, 원하는 상태를 정성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Key Result는 바로 그 원하는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수치를 말합니다. 각각 Goal과 Signal/Metric에 대응합니다. 가리키는 말과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나 큰 틀에서는 같습니다.


OKR의 도입이 어렵거나 잘 안된다고 느끼는 경우는 바로 Vision/Goal/Object 또는 일의 의미라고 부르는 것에서 실제 우리가 해야 할 업무(Mission), 달성해야 할 목표(Metric, Key Result)를 도출하는 일련의 과정이 어색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그 행동자체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한 채점받아왔기 때문이지요. 회사 같은 곳에서 연차가 높아질 수록 ‘일의 의미를 생각하라’,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 건지 생각하라’ 라는 식의 피드백을 윗사람으로부터 자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윗사람들이 그것을 먼저 알려준 기억은 특별히 없습니다. 그런 피드백을 주기 전에 처음부터 명시적으로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니까요. OKR의 도입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 또한 동기부여의 상승을 주로 꼽습니다.


테스트3. 니가 뭔데?

메시지가 강력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라는 말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아무리 메시지가 옳은 말이라도 메신저가 빈약해서는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조직의 이유, 의미와 같은 중요한 위상을 가진 Vision같은 것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우리의 Vision이 아래의 사람들이 한 말인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조직의 설계자 또는 그에 준하는 사람인가

물건의 목적은 그 물건을 처음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압니다. 조직 또한 마찬가지라 조직의 존재목적은 조직의 설계자 또는 조직의 설립자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Vision을 제시하는 것도 그 조직을 처음 만든 사람이 하는 것이 제일 설득력이 높습니다. 그래서 ‘초대’ 리더가 하는 말과 행동은 언제나 상징적인 위상이 있습니다. 가까이는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 같은 문서가 있고, 멀리는 조지 워싱턴의 예시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헌법에 따라 임기 이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비로소 대통령제가 확립되었다고 평가받지요.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조직을 만든 ‘첫’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 만든 것과 다름 없다면 그가 곧 조직의 설계자입니다. 맥도날드는 맥도날드 형제가 만들었지만 실제 지금의 형태를 구축한 것은 레이 크록 이었습니다. 스타벅스는 하워드 슐츠의 회사로 기억하지 그 이전 시절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의 창립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2) 조직 내 충분한 위상을 갖추고 있는가

최근에 슬램덩크를 다시 보았습니다. 나이를 먹고 보니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확실히 있더군요. 채치수는 전국제패라는 꿈을 어렸을 때 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농구부 내에서 그다지 받아들여지지 못하죠. 나이도 어렸고, 실력도 불충분해보였으니까요. 3학년이 되어 주장이 되고 후배들을 이끌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자 비로소 그의 전국제패라는 Vision이 농구부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작중 시점에서 농구부 내 그런 정도의 Vision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낼만한 사람은 채치수 말고는 없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안 감독님이 말해도 채치수 만큼은 안됩니다. 그 분도 엄청난 명성을 지닌 것은 맞지만, 연습에 잘 나오지 않아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사람의 이야기에 그렇게 귀를 기울일 거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감만 사기 좋죠. 1년 전의 채치수가 그랬듯이요.


3) 해낼 만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소설 듄은 메시아를 다룬 이야기이지만, 그 정도의 메시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체 어느 정도로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메시아 찬가가 아닙니다. 작중에 나오는 베네 게세리트라는 집단이 미리 수천년 전부터 예언 등의 형태로 제반 작업을 해놓았고, 메시아로 쓰일 유전자를 수 세대에 걸쳐 설계합니다. 그 결과 폴 아트레디이스라는 인물은 예언에 쓰여진 내용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스스로가 메시아임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증명합니다. 이에 프레멘 사람들은 그가 예언대로 온 것이라며 그를 강하게 믿고 말죠.

소설 정도는 아니더라도, Vision을 내세우는 사람은 그 Vision을 실현할 능력이 있거나, 앞으로 가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고 설득해야 합니다. 과거의 실적, 성공, 배경 같은 요소가 이 믿음을 주는 데 주로 쓰이지요. 가진 능력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그 열망만큼은 진심임을 보여주어도 됩니다. 일을 이루는 것은 능력보다는 의지에 기인한다고 설득할 수도 있으니까요.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위 세 집단에 모두 속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방법을 따르기를 권고드립니다. 첫 번째, 만약 당신에게 놀라운 Vision이 있다면, 위 조건을 갖춘 다른 사람을 찾고, 설득하여 그 사람의 입을 빌리세요.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스피커가 누구냐인 것은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문화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더 권위있는 사람, 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하는 말은 무게감 또한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보고 계시는 이 글은 무명의 블로거가 작성하고 발표하는 것입니다만, 만약 저명한 대학교 교수나 사장 직함을 가진 분의 이름으로 지면의 공식 칼럼으로 발표한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분명 다를 겁니다.


두 번째로 당신에게 특별한 Vision이 없다면 상위 조직의 Vision과 연결하세요. 우리의 Vision은 곧 상위 조직의 Vision의 부분집합이며, 궁극적으로는 상위 조직의 Vision 실현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조직의 논리와 위계 구조가 설득을 대신하여 준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의 발전, 민족의 중흥이 국민 전체의 테마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내셔널리티에서 나아가 인류 전체의 발전을 내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단점은 상위 조직과 동질감이나 공감대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연세대 동문회에서 고려대의 발전 Vision을 이야기한다면, 누가 거기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좋은 말이야.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위 테스트 3개를 통과하더라도 여전히 Vision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 테스트는 Vision의 정합성(업무와 연관성이 있는가, 진실성이 있는가, 실현가능성이 있는가)을 검토하는 작업이었을 뿐, 이 Vision을 우리가 왜 따라하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Vision은 조직의 방향에 대한 조직 리더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여기저기 붙여놓고 공개하기 때문에 공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조직 전체 구성원 의견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조직의 리더가 바뀔 때마다 Vision은 변경되며, 나아가 바뀐 조직의 리더에게 새로운 Vision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구성원이 리더에게 Vision을 ‘제공’하거나 ‘제안’한다는 말은 어색하지요. Vision은 리더가 스스로가 혹은 리더 계층 전반의 의견을 모아 리더가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Vision은 일반적으로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Vision은 ‘선포’ 되는 것입니다. 선포는 매우 일방향적인 형태의 소통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결단하는 리더의 입장과 실제로 조직에서 일하는 구성원의 입장은 같지 않습니다. 리더의 시선과 시야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Taste가 짙게 깔려 있을 수 밖에 없는 이 Vision에 대해 구성원이 쉽게 동의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아주 잘 만든 Vision이라면 Vision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릅니다만. 공주 구출 Vision을 생각해볼까요? 공주 구출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왕과 왕비한테 해코지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옆 나라 마왕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거나 하는 사연이 있다면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한 왕실 부흥이라는 Vision을 갖고 촉 땅으로 들어갑니다. 본인과 본인 의형제들에게는 Vision 실현의 큰 한 발자국이었지요. 그러나 촉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런 Vision은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운 일일 뿐입니다. 편안하게 살고 있던 자신이 왜 외지에서 온 유비가 설정한 Vision을 위해 그런 고생과 노력을 해야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Vision은 선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을 대상으로 설득과 동의 작업이 후속조치로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Vision이 이루어지면 구성원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모두가 Vision에 대해 동의하고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원하는 바는 다르겠지만요.


Vision에 대한 설득에 대해서 다음 차례인 Motivation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출처 : 광활하고 끝없는 바다를 갈망하도록 가르치십시오 – Quote Investigator®

2) 구글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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