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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Apr 29. 2017

그대의 계절은 어디쯤에 있나요

봄이 오는 계절

그대의 계절은 어디쯤에 있나요.


창문 너머 도로가 젖어들기 시작하고 곧이어 투명한 창문 위로 빗방울이 맺혀 가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 너머에는 전봇대 하나가 있고 사방으로 정신없이 연결 전기 줄이 보이지만 어쩐지 그리 불안정한 느낌은 아니다.

도로가 젖어들고 어느새 물웅덩이가 생기고 그 위로 비추는 수많은 전기선들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한다.

봄의 계절이 오면 비에 섞인 풀잎 향기가 봄비에 묻어 내린다.

순도 백 프로의 진한 풀 향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비가 오면 흙이 파여 물웅덩이가 이곳저곳에 생기고 신발에는 진흙이 잔뜩 달라붙던 그 시절의 그 계절일까.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은 꽤나 멀었지만 나보다 더 먼 곳에 살았던 친구들과 걸었던 시간은 거리에 비해 꽤나 짧았다.

얼마 있다 그 울퉁불퉁한 흙길에 새하얀 시멘트가 깔렸다. 시멘트는 회색일 테지만 그때 나의 눈에는 분명 새 스케치북의 첫 장을 펼친 것 마냥 순백의 색이었다.

우리 동네에 시멘트가 깔린 첫 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비가 와도 신발에 흙이 달라붙지 않아 좋았다.

절벽처럼 뚝 떨어진 시멘트 옆 길 가로 자라난 꽃들이 더 예뻤다.

어느 날 보니 풀들 사이로 코스모스가 피어있었다. 분명 코스모스는 6월부터 핀다고 하는데 왜 나는 이른 봄에 그 코스모스를 보았던 것일까.

분홍색 꽃 하나를 꺾어 무심하게 친구의 귀에 꽂아주었다.

내 귀에는 하얀색을 꽂았다.

물론 그날은 다른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버스비로 군것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늘 나와 함께 걸어줬다. 친구들은 모두 버스 타고 갈 때도 그 아이만은 나와 함께 걸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평소에 그리도 놀리고 괴롭혔기에 내가 다가가자 그 아이가 움찔했다.

그 아이는 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내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할 정도로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내가 그 아이를 괴롭혔던 이유는 아마도 주변의 친구들에게 강해 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친구를 좋아했던 것 일수도 있다.

그 아이에게서 늘 꽃향기가 났다.

하늘이 검게 변하고 멀리서 수박이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느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를 피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다 맞았다. 어린시절에는 늘 비를 맞고싶었다.

도로 위로 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리면 발로 첨벙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때 거리를 오가는 차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늘 도로는 우리가 차지했다.

우리 집이 제일 먼저 있는 것이 늘 싫었다. 우리 집이 제일 멀리 있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가면 엄마가 나를 홀딱 벗기고 우물가에 미리 담아놓았던 물에 뜨거운 물을 타서 끼얹어 주었다.

엄마는 감기 걸린다고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걸어오는 것이 더 좋았다.

사실 버스비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은근슬쩍 돈을 안 내고 버스를 타기도 했다.

물론 버스기사 아저씨는 알면서도 속아 주었던 것 같다.

겨울이 오기 전에 그 아이는 전학을 갔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이름도, 생김새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가끔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고개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움직일 때면 문득 그 모습이 마치 그 아이가 웃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한다.

우리는 언제 알게 되었고 언제 헤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비에 젖은 그때의 그 향기뿐이다.  그계절이 오면 왜 아직까지 오래된 향기가 내 코끝에 스치는지 알길은 없다.


비가 그친 후 다소 시원하기도 하고 약간은 차가운 느낌의 바람이 얼굴을 감싸면 기억에 저장되지도 않은 불투명한 어느 추억이 문득 그리워진다.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그리워진다.

오래된 기억일까.

차라리 명확한 기억이 떠오른다면 좋겠다.

아, 이 바람의 온도와 향기는 그때 그 기억 때문이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그냥 그 향기와 시원하면서도 차가운 바람은 그렇게 내 마음을 훑고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때론 잠시 동안이라도 잡고 싶다. 그저 그 바람을 느끼살아날 것 같은 기억을 만나고 싶다.

창밖을 보니 봄비는 어느새 그치고 풀잎 냄새는 다시 어디인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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