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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Jan 01. 2018

만남 템플스테이 : 우리는 사라져 간다.


추운 한 겨울 나는 깊은 산속 사찰 방 한 구석에 누웠다.

어떤 종교도 믿지 않지만 누군가의 권유로  이곳에 왔다.

그 이름도 이상한 만남 템플스테이.

남녀 간의 만남을 주제로 한 템플 스테이다.

뭐, 사찰 미팅?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날 그토록 치를 떨던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다.


소개팅은 늘 내키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싫어 늘 그러한 것들을 피해왔다.

나의 모습과 다르게 위축되고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몹시도 싫었다.

낯선 이를 만나는 것은 며칠간의 에너지를 한 번에 몰아 쓰는 것과 같았다.

최근에야 나는 스스로 변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일에도 노력을 하기로 나와의 약속을 했다.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나를 변하게 만들었던 것은 불편한 만남 또한 나의 일부를 발견하는 시간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늘 나의 진짜 모습이 아냐,라고 말했지만 그 모습 또한 나의 모습의 일부다.

낯선 이를 만나기 위해 신경이 예민해지고 에너지를 쏟아붓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 또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단순히 그런 일련의 행동과 감정, 기분이 싫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좀 더 나를 깊이 탐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부정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날들과 다르게 나의 다른 모습도 진정한 나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낯선 이들에 섞여 앉아 중학생도 이미 알고 있는 진부한 연애특강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인스턴트 같은 만남이 싫었다. 늘 영화 같은 만남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너와 나는 이성교제를 목적으로 오늘 만난 거야! 하는 분위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결국 그 만남은 O 아니면 X로 끝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하나의 목적을 두고 테트리스를 하듯 상대방을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보는 만남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싫어하던 모습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만남 속에서 깨닫게 되는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     


한겨울 새벽 4시 이미 하루를 시작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살을 에는 깊은 산속에 때아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인생을 닮은 108배를 시작했다.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고통과 고민 희로애락, 사랑에 이르는 백팔번뇌.

기쁘고 힘차게 절을 시작했지만 곧 삶의 온갖 고통과 후회가 폭죽이 터지듯 마음속에서 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삶의 경외와 감사......

나로서 존재함에 또 감탄하고 감사한다.

세상이 있음에 감사한다,

또 한 우주가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절이 끝나자 마치 인생의 끝이 찾아온 것 같은 기분에 슬펐다.

나의 삶에도 언젠가는 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늘 알고 있지만 그토록 깊고 생생하게 찾아온 적이 없었다.

호흡을 고르며 지나온 삶을 되짚어본다.

사랑과 미움,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을 때린다.

언젠가는 끝날 삶이라도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질 우주의 작은 먼지 조각이라도 나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황홀하고 경이롭다.

아무런 생각 없이, 고민 없이, 후회 없이, 눈물, 미움, 고통, 그리고 감정 없이 살아가다 죽을 수도 있다. 그것이 삶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만고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시간 속에 사라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가 가지는 모든 존재와 아픔 속에는 삶의 무한한 비밀이 있고 해답이 있다.

삶은 성찰과 배움으로 끊임없이 연장된다는 사실을 추운 겨울 한여름의 장마처럼 시린 비가 내리는 사찰의 어느  한구석에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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