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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Mar 15. 2018

잃어버린 계절

 

누군가 내게 "봄" 은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 대답했다.


왜 그랬을까?

인류가 찾으려는 우주의 시작 보다, 수학의 난해한 문제보다, 국제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환경문제 혹은 전쟁보다 더 복잡한 “봄”에 대한 나의 감정을 설명할 자신도, 시간도, 묘사할 적절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차라리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     


내가 다가간 순간 작은 바람에 사라지는 민들레 홀씨처럼 그 순간 삶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걸까.      




유독 좁아터진 비행기를 타고 13시간을 날아 그곳에 도착한 날 푸른 유채색 물감에 빠진 듯 맑고 투명한 날씨와 공기는 이제 막 뚜껑을 딴 맥주의 신선한 거품처럼 느껴졌다,

호주에는 뚜렷한 봄이 없다. 한국의 겨울처럼 깊은 동면에 빠지는 계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마도 겨울의 끝 혹은 봄의 시작쯤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봄은 미래의 그녀와 나의 거리처럼 다르게 흘렀다.

숲을 가로질러 가는 길에 온통 봄의 새싹들로 만발했다. 작은 연못을 지나갈 때 형형색색의 자연 꽃들의 꽃잎이 날리듯 몹시도 흔들렸다. 이 연못의 다리를 건너면 우리는 어딘가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아픔도 고통도 없는 사랑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아닐까.

찰나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꽃잎이 하나 둘 날아올라 하늘 위에서 춤을 추었다.

떨리고 수줍은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사라져 갔다.

그녀와 나는 꽃잎이었다.     


누군가에게 봄은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작은 초록빛이 피어남을 보았을 때이고

어떤 이에게는 가슴속에 풀잎 하나가 땅위로 톡 하고 자라나듯 한쪽 구석이 따스해져 오는 순간 봄이 옴을 느낀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혼난 뒤 집 밖으로 쫓겨난 적이 있다. 집안으로 빨리 들어가자는 어머니의 설득에도 반항심에 사로잡혀 한 겨울 집 밖에서 얇은 반팔 티셔츠와 슬리퍼로 몇 시간을 서 있었던 적이 있다.

발가락이 사라질 것 같은 불안에 결국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갔지만 얼음을 잘게 쪼갠듯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그때의 바람을 잊을 수 없다.

내게 겨울은 그 바람이다.

그 바람이 어느 순간 양털의 솜이불처럼 부드러운 느낌으로 바뀔 때 봄이 다가옴을 느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봄은 내게 머무르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순간 봄은 늘 사라져 버렸다.     

나에게 봄은 무엇일까?     

“봄이 올 때쯤 다시 올게...”

그 사람은 어떤 봄을 말했던 걸까.

구분선이 불명확한 호주의 봄이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봄이었을까.

나는 지난 수년간 그 말을 수백수천 번 되새겼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둘 다 아니었을 테다.

그리고 그 꽃잎이 날리던 봄은 내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봄의 계절을 나는 마냥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게 봄은 잃어버린 계절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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