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시원 Jul 01. 2018

그대, 어디쯤에 있나요?

그대, 어디쯤에 있나요?     

해가 미처 뜨지도 않은 새벽 6시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밤사이 본드로 눈꺼풀을 붙여놓은 듯 힘겹게 알람을 끄고 잠시 엎드린 채 얼굴을 베갯속에 집어넣는다.

몸도 가눌 수 없는 정신으로 세안과 머리를 감는다. 허둥지둥 옷을 걸쳐 입고 길을 나서면 나와 같은 시간에 장소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볼 여유는 없다.

회사를 가는 길도,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도 매일 똑같다. 가끔 변하는 것은 날씨뿐이다.

잔뜩 흐렸다가 해가 뜨고 비도 오고, 어찌 보면 그것도 반복되는 것일 테다.     

오전 8시 일이 시작되고 하루해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곳에 갇힌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계속 이어진다.

어떤 이는 20 살꽃다운 나이부터 손자 손녀까지 본 60살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무한 반복되는 커다란 뫼비우스의 띠 속에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런 삶이 싫어 그곳을 빠져나와 자유를 찾기도 하고 또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언젠간 낭만을 찾아 떠나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떠오른다.

노을 지는 바닷가에 앉아 한 참 동안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고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하루 종일 넋 놓고 보고 싶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방법이 있나,’ ‘어딜 가나 다 똑같아.’

몹시도 경멸했던 그 말들에 지금은 아무런 대꾸조차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세월은 간다.


차라리 시간이 빨리 가버리기를 기다릴 때가 많다(시간에 꽃잎이 시들어 죽어갈지라도).

일 년에 몇 번 있지 않은 쉬는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날들이 지나가면 그 기다림보다 더 허무하고 절망스러운 시간만이 남는다.     


반복되던 날들 중 어느 날 나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초록빛 나뭇잎이 파란 하늘 속에서 바람에 파르르 흔들리며 반짝이던 장면을 보고 멈춰 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빛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사라졌다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먹구름이 낀 듯 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살면 시 눈을 뜨니 그녀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잤어?”라고 나지막이 물었다.

나의 얼굴 위를 검지 손으로 그리듯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간질이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잠이 스르르 왔다.

다시 바람이 얼굴을 감싸 안았고 나는 눈을 떴다. 그때 그녀는 내 옆에 누워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평화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잔잔한 파도소리처럼 낮게 귓가에 속삭였다.

“내게 찾아와서 고백했던 그 날, 기억나?”

그녀의 말이 바람에 실려 멀리서 돌아오는 듯했다.

“응, 그날의 바람의 향기도 기억하는 걸.”

“거짓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녀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기억해 지금의 이 향기,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하고 싶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취했을 뿐이리라.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 다시 갇혀 버렸다.)     


눈앞을 가로막는 검은 그림자에 눈을 떴다.

'누구지?'

그 순간, 나는 무엇을 기대 했던걸까.......

 작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나뭇잎의 흔들림을 바라보다가 다시 가던 길을 나섰다.

그리고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어쩔 수 없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의 이별도 결국에는 익숙해질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