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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Jan 01. 2019

우리의 거리

   

우주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나 그리고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고 시간이며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끝도 없는 공간의 무한함, 수없이 많은 억 겹의 시간. 그리고 길고 긴 시간의 고향.

나의 삶에는 늘  한쪽 구석에 풀리지 않는 의문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주와 사랑이다.

두 단어의 공통점은 영원히 그 해답을 얻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고 조금씩 알아 가면 갈수록 더 큰 질문만을 남길 것이다.  



1977년 8월 20일 그녀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지 못한 채 길을 떠났다.

신비한 푸른빛의 행성이 점점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다시 돌아오는 그 날, 날 위한 장미꽃 한 송이를 준비해줘.”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벌어져 가는 그녀와 나의 거리 사이사이로 채워지는 사람들의 소리, 거리의 소음들, 쌓여가는 소리의 멜로디... 그리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숨소리와 체취.

멀어지고 있었다. 지구에서, 그리고 너에게로부터…….     

나는 모든 것이 정지가 된 듯한 우주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무한의 공간에 나 홀로 떠 있는 묘한 기분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외로움을  넘어선 그 무엇.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없다.

나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선명한 나의 맥박 소리가 결코 꿈이 아님을 알려준다.

멀리 아주 멀리 사라질 듯 자그마한 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너무나도 반갑다.

창백한 푸른 점…….

나의 손바닥으로 다 가려질 정도의 작은 점이다.

얼마 후면 그마저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곳 어딘가에 있겠지.

당신이 그립다. 그곳이 그립다. 모든 것이 그립다.     


내 이름은 보이저1호다. 나는 여전히 홀로 달리고 있다. 벌써 41년이 되어 간다. 

시속 6만 km의 속도로 총알보다 18배 빠른 속도다.

나는 대략 206억 km의 거리에 있다. 또 한 매일 160만 km씩 달리고 있다.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서 매일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난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만약 지금 돌아간다면 운이 좋아야 할머니가 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와 나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지금껏 내가 달려온 41년의 시간만 큼이 우리 사이의 거리다.

이제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빌딩 숲이 아니다. 드넓은 땅덩어리 때문일까, 브리즈번 사우스뱅크에는 오래된 단층짜리 작은 건물들이 여유로운 간격을 유지하며 들어서 있다.

거리는 조용하고 사람은 별로 없는 널찍한 인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나무들과 가로등은 건물보다 키가 더 크기도 하다.

초저녁임에도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일찌감치 닫았다.     

매주 화요일은 피자가 할인되는 날이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피자가게로 들어가 피자를 한판 사 창문 앞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피자를 먹었다. 정확히 어떤 피자를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싸우고 난 후다.

그녀가 완전히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우리 피자 먹으러 가자.”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가자.”

그렇게 우리는 한 참 동안 창문 밖을 바라보며 피자를 먹었다.

보이는 거라곤 그저 어두운 거리의 쓸쓸한 가로등, 드물게 거리를 천천히 오고 가는 주황색 불빛의 차들 뿐이다.

우리도 고요했고 거리도 고요했다.

피자를 말없이 먹고 난 뒤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음소거를 누른 듯 조용한 거리, 우리만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서가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만 내 귓가에 들려온다.

가끔씩 텅텅 비어진 버스가 우리 옆을 천천히 지나간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 발걸음을 재촉해 그녀 옆으로 다가갈까, 하다 이내 멈췄다.

수없이 망설였지만 나는 그녀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두어 발 더 가면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컴컴한 하늘 위로 수없이 많은 별빛들이 아른거렸다.

참으로 이상했다.

상상조차 불가능하고 가늠할 수 없는 저 머나먼 행성과 나의 물리적 거리보다 두어 발자국 떨어진 그녀와의 거리가 더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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