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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May 06. 2019

나는 그곳을 걷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딱히 트래킹을 시도한 적은 없다. 혼자 그 흔한 올레길을 걸은 적도 없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소망이 있다.

스웨덴의 쿵스레덴, 미국의 퍼시픽크레스트 트레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것이다.

최소한 이 중 하나라도 내 생애 할 수있을까?


나는 늘 그곳을 걷고 싶었다.      


‘낯선 곳을 여행을 하거나, 그곳을 걸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누군가 물었다.

몇 년 전까지도 나는 늘 막연하게 ‘아 거기를 다녀오며 모든 게 좋아질 거야’라고 허무맹랑하게 대답하곤 했다.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오르는, 너도나도 하는 SNS 사진 밑에 쓰인 흔한 말들이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YOLO!'     


새로운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오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고 삶이 달라 보이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유를 찾아 감옥을 탈출해 멕시코의 해변 마을 지후아타네호로 떠난 영화‘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마주한 따스하고 푸른 바다처럼 나의 삶도 그럴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삶과 영화가 다른 것은 그 눈부신 바다 뒤에 영화는 끝나고 삶은 오늘과 같은 내일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나의 인생은 결코 한 번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언젠간 내 삶이 영화처럼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영화를 수차례 보고 난 후 나는 지후아타네호로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도 영화 속의 그들처럼 자유를 찾고 나면 삶의 영원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모든 것은 좋았다. 그곳의 바다도, 바람도, 사람도, 페이트 칠이 다 벗겨진 벽에 기대 잠든 강아지도,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그늘 아래 나무에 앉아 마시는 옛날 향수가 깃든 코카콜라도.....

한적한 바닷가의 나무 아래서 밀려오는 파도의 자장가 소리와 바람의 흔들리는 야자수 나뭇잎의 생기 가득한 소리에 모든 잡념과 슬픔이 사라진 것 같았다.

삶에 대한 마음가짐과 목표도 생기고 오래된 차의 엔진오일처럼 끈적끈적했던 피가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에 젊음의 새로운 피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당시의 기억은 어느 날 잠시 꾼 꿈처럼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몇 장의 순간이 떠오를 뿐 또렷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나의 현실은 녹슬어 버린 자전거처럼 게을러졌다.

부정의 세포들이 자라 어느새 나를 집어삼켰다.   마치 반즈음 남은 콜라의 밍밍한 맛처럼 삶은 지독히도 맛이 없어졌다.   

그토록 원했던 경험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고 할 수는 없다.

나를 찾아 떠난 여행으로 인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도 사실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만들 때 필요하지도 않고 직장상사의 개소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멘탈이 얻어지지도 않는다.

숨 쉬는 것처럼 매일같이 오고 가는 길을 지도를 보고 찾을 일도 없고, 낯선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 이야기할 일도 좀처럼 없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  그럼 그곳을 걸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사람들이 그토록 말하는, 인생은 단 한 번이기 때문에?

      

낯선 곳을 여행하고 나를 찾고, 세상을 넓게 보게 됨으로 더 나은 삶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며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이 얻어지지도 않는다. 개똥철학이라고 오지랖 넓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안 받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 늘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계획을 했든 아니든 마음과 몸은 늘 어딘가를 향해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가는 그 길 위에서 내가 느끼는 순간의 모든 것이 중요한 것이다.

행복을 그곳에 두고 경쟁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늘, 그리고 지금 순간에 행복이 옆자리에 있어야 한다.

여행이 좋은 것은 목적지로 가는 과정마저 너무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숨 쉬는 모든 순간, 고생스러운 순간까지도 행복함을 느끼는 것일 테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맹목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행복의 가상세계, 그곳을 가는 과정이 철저히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길을 걷고 싶은 것은 비루한 철학적 공상에 빠져있다거나, 난 너희들과 다르다는 "척" 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그곳을 걸으며 느끼고 가지게 될 낯선 생각들과 삶을 다른 방향과 관점에서 보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얼마나 많은 목표를 달성했냐 보다, 얼마나 많은 돈과 명예를 얻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삶의 순간을 진정으로 살았느냐가 더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목표를 위한 여행이라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맞다.

앞서 말했듯 인생은 어느 한 지점을 위한 여정이 결코 아니다.

삶의 한 순간순간이 모두 인생의 의미 그 자체이고 그 조각이 모여 당신을 완성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신 삶의, 인생의 어떠한 시간도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버려질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돌이켜 보면 지후아타네호로 떠난 후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랬으면 나는 그 순간을 완벽히 살았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그 순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은 오늘 하루가 전부인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곳을 걷고 싶은 이유는 현실의 고통을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닌 현실을 이해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의 당신을 이해할 수도 있을 테니까...

        언젠가 완성될 에필로그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나는 당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있었지만,

내가 당신에게 가는 길은 당신을 만나기 위한 길이 아니었음을 그 길 위에서 뒤늦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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