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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an 08. 2024

절망의 끝을 알려주는 환희의 빛깔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p17

 

#크리스티앙보뱅 #산문집 #환희의인간 #1984books  #절망뒤찾아오는환희 #삶 #푸르른아름다움  



구월 두번째 물의 날이고 비가 내리고 있다. 창밖으로 물보라 이는 듯한 숲을 보았다. 보뱅의 <환희의 인간>을 완독했고 다시 읽고 있다.


고열에 시달린 직후 읽었던 보뱅의 글은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 같았다. 신경증적인 감각들이 완전히 다스려졌을 때 찾아올 법한 평온. 그 속에서 조용히 숨 쉬는 것으로 몸이 회복되는 듯했다. 다시 읽는데 페이지마다 빛을 느낀다. “한편의 시처럼 반짝이는 빛”.


환희는 삶에 속한 것, 하지만 어둠을 떨치고 나온 하늘의 푸르름이며, 환희의 인간은 이런 삶의 푸르름을 누린다.


그녀의 환희가 요란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얻은 미소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환희는 “우리 안에 머무는 감동적이고 야생적이며 침범할 수 없는 한밤중의 하늘”에 관한 것이며, “푸른 페이지들 위에 담긴 별의 하얀 반짝임” 같은 것이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차가운 순백의 선율, 아이의 흥얼거림, 파랗고 붉은 스위트피, 금빛의 말이 풀빛을 먹는 빛의 풍경, 영원에 속한 단어들 향한 그리움과 지금 한순간 우리를 떨게 하는 감각적 희열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비탄에 잠긴 신의 아들을 품고 있으며, 어린 시절 많은 빛을 약속받았으나 이제 죽음 앞에서 가엽게 흔들리는, 노년의 황폐한 아름다움마저 끌어안는다.


이 모든, 어둠이 짙어져야 드러나는 빛의 아름다움을, 어두운 밤하늘의 푸르름과 절망의 끝을 알려주는 "그 푸르름을, 당신을 위해 여기 이 책 속에 담는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나는 그걸 다시 읽고서야 더디게 받고 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바로 그 말속에 머물며, 침묵할 때면 바로 그 침묵 속에 머문다. 하지만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 자리를 정리하고 벗어나, 말과 침묵의 고역에서 해방된 희미한 선율 속으로 멀어져 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멀어져 가는 한 젊은 남자처럼, 우리도 멀어져 간다. 목적지를 안다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 안에 있다는 건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연약한 인생의 오솔길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으로, 한쪽 빛에서 다른 쪽 빛으로 건너간다. 불확실함을 견디고 주저함에 미소지으며, 다른 모든 것은 잊은 채로 우리 안의 희미한 생의 움직임에 주의하면서 말이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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