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lander Jul 11. 2024

수수께끼 같은 타인들의 일상

유디트 헤르만, <레티파크>

최진영 작가의 단편집 <겨울방학>을 끝내고 유디트 헤르만의 <레티파크>로 넘어왔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단편집들이라 나란히 읽노라니 그 개성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두 작가 모두 오래전 단편소설의 매력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처음 만났다. 그 이야기들은 감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던 이십대에 쓰인 것들이었고, 나는 그 날것 같은 매력이 좋았다. 순전히 자기 자신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감성이 놀라웠다. 특히 헤르만의 단편집은 한동안 가방에 넣고 다니며 아무데나 펼쳐서 장면 장면들을 들여다보곤 했다. 시간이 지났다. 무엇이 바뀌었고 그대로인지 살피느라 공들여 읽었는데, 그 끝에서 새삼스러워지는 건 독자인 나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최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헤르만의 시선은 섬세하다.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이가세트는 번역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말하기 위해 무언가를 말하지 않은 채 남겨놓는다고, 이는 세상 모든 것을 말로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그 언어 속에서 침묵으로 남겨진 것을 다른 언어로 어떻게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소설들은 이와 비슷한 연유로 독해가 어렵다. 다르게 말하면서 동시에 말하지 않는 소설들. 유디트 헤르만의 이야기가 그렇다. 

 

짧은 단편들이 수록된 <레티파크>에서는, 말한 것 만큼이나 말하지 않은 것들이 힘을 발휘한다. 듬성듬성한 이야기는 내 마음에도 빈 공간을 만들어낸다. 무언가 진동하고 여운으로 떠돌도록 충분히 비어 있는 상태. 비어 있는 탓에 채워지는, 헤르만 특유의 고요한 정서는 섬세하게 조탁된 언어만큼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다. 그녀의 이야기가 지닌 고유한 빛은, 여타 소설처럼 이해나 통찰의 순간에 있지 않다. 물론 삶과 관계의 속성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없지 않으며, 많은 단편들은 그런 순간들 덕에 유독 아름답거나 매력적이고 따뜻함 혹은 쓸쓸함을 자아낸다(이런 점에서 '레티파크', '종이비행기'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고요히 하지만 끈덕지게 흔들어대는 건 모호한 순간들이다.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무엇이 도사리는지 모를 장면들이다. '시'가 그런 이야기였다. 다른 16편처럼 이야기는 짧고, 상황을 이해할 만한 최소한의 정보가 주어진다. 아버지의 정신 병동 이력, 난장판인 아버지의 작은집, 오래전 연을 끊고 살았으나 이제 일년에 한두번 찾아가는 나, 언젠가 내가 들고 간 자두 케이크와 살구 케이크, 아버지는 호모들이 만든 케이크라 말하면서 탐욕스럽게 먹어치운다. 물건으로 가득찬 집의 혼돈은 아버지를 살게한다. 한때 아버지는 정신병원에서 시를 견디는 연습을 나와 함께 했다. 이것이 전부다. 


“당시 그는 시를 견디는 연습을 했다. 그는 시를 읽으면서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그에게 몹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말해야겠다. 우리는 함께 그걸 연습했다. 그 병원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 일은 그것 외에 많지가 않았으니까. 그는 두꺼운 시집 한 권을 도서관에서 빌렸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나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날에는 단 한 줄도 그에게 버거웠다. “갈매기들은 모두 에마라는 이름을 가진 듯 보인다"*라는 행만 해도 견디지 못했고, "우리는 산사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밤이 우리를 휩쓸어 갈 때까지"** 같은 행은 그를 죽였을 것이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말았다. ” pp55-56       


단편들 전반에 깔려 있는 정서는 쓸쓸하다. 저물어가는 계절의 공기를 품고 있다. 인물들은 상처 입은 패잔병들 같다. 이제 막 연인이 떠났거나, 이별의 시작에 들어섰으며, 새출발 혹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하나같이 관계와 삶, 가치의 변화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이다. 다소 어둑하고 묵직한 소재를 짧은 삽화 속에 담고 있다. 하지만 감정이란 민감한 음들이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다. 우아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단편을 구성한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버려 어떤 것도 손에 거머쥐지 못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저 그 장면들의 정서만이 내게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것 같았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읽기를 반복하다 '어쩌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뒤늦게 곱씹어보게 되는 삶의 장면들이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무언가를 보고 듣고 어떤 감정이 차오르고 그리고 사라지는데, 그때는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없다. 그때 그는 왜 그런 말을 했고 나는 왜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인지, 그때 이상하게 오래 시선이 머무른 아주 사소한 것들과 그 사이를 채운 대기의 정서, 빈틈이 너무 많아 모호한, 징조가 엿보이나 선명히 해석할 수 없으며 아직은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낼 수 없는, 하지만 돌이켜봤을 때 바로 거기서 길이 갈라졌고 방향이 틀어졌으며, 새로 시작하거나 종결짓게 되었음을 알게되는 장면들.   


헤르만 소설 특유의 정서는 침묵만이 아니라 상황과 비유, 그리고 시선 또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서술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 또한 면밀히 관찰하거나 관조하는 눈을 지녔다. 가령, '뇌'의 필리프가 데보라를 관찰하는 눈. 그녀가 두 손을 비비고 결혼반지를 돌리는 모습을, 바닥을 향한 시선과 그녀의 맨발, 그리고 갈망이란 단어를 발음하는 방식. 이런 모습들은 필리프에게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보여주기로 선택한 것들을 주시하다 보면, 인물의 마음에서 작동되는 것들이 내 안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는 것 같다. 


“빈센트는 보이지 않는 반쪽이 결여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몸 주위로 반쪽의 후광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 '석탄', p19
“밤에 그들 모두는 열린 창가에 함께 서 있다. 테스는 새미를 팔에 안고 있다. 그녀는 새미에게 담요를 단단히 둘러 주었다. 루크는 자기 아노락을 입었다. 닉은 종이비행기를 높이 들고 있다. 그가 말한다. 만약에 네가 빨리 던지면, 만약에 네가-바로 던지면, 너는 중력을 잠시 극복할 수 있어. 삼 초 동안 활공. 그다음엔 바람을 타고 쭉 날아야 해.”

- '종이비행기', p99
“이 모든 걸 이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직 자신에게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로베르트가 왜 떠났는지를. 그녀가 사실상 거의 평생을,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낸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이해할 시간이.
셀마는 포플러 꽃가루가 있던 그날 밤을 이따금 생각한다. 자연발화라는 말, 그 전문 용어를 생각한다. 그녀는 사랑이란 자연 발화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생각 또한 영속적인 것은 아니고, 그녀는 그 생각을 다시 버린다.”

- ‘포플러 꽃가루’, p124
“반쯤 언 몸으로, 묘하게 유쾌하고 만족한 기분으로, 그리고 나는 옷을 갈아입었고 따뜻한 걸 좀 먹으려고 무엇보다 뭘 좀 마시려고 다시 호텔바로 내려갔다.
나는 위스키를 한 잔 주문했다.
그리고 이어서 또 한 잔 주문했다.     

지금은 사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잘 극복했다. 나는 뉴욕으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스물네 시간을 더 보냈다. 더 이상 특별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아주 멋진 시간이었다. 나는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거리를 구경한 후 오후에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갔다.”

- ‘편지’, pp167-168


덧. 


1. 배수아 작가는 <작별들 순간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별은 특정 시기에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는 비밀 의례와 같다고,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라고. 이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편이 이 책의 첫 수록작인 '석탄'. 강렬하게 남아 있는 어떤 문장이 종종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이야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문장도 이야기도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2. 책의 서문을 읽던 중에 샹페의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From the Sempé anthology “Mixed Messages” (2003)
“나의 기억 속에서 때는 가을이고, 내 책상 위에 비치는 투명하고 까칠한 빛은 가을빛이다. 그 책상 앞에서 창밖으로는 거리가 그리고 무엇보다 맞은편 집이 보였다. 현대적인 도회풍 건축물, 커튼 없는 파노라마 창, 그 너머에서 가족들은 함께 저녁을 먹었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고, 요가를 했고,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고, 부모들은 불을 껐고, 아침이면 자신 있게 발코니 문을 열었다. 이처럼 평범한 동시에 낯선 삶의 광경은, 내가 기억하기로, <레티파크> 속 이야기들에 영향을 주었다.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다채롭고 수수께끼 같은 의미가 실린 타인들의 일상이 말이다. 당신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가 글에 자취를 남기고, 그 자취는 나중에야,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눈에 띈다, 늘 그렇다.” p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