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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혁 Nov 26. 2023

권무십일홍, 아니 화무십일홍, 아니 화무삼일홍

영화 <서울의 봄> 리뷰

   겨울의 초입에 잃어버린 봄을 부르짖는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 열기가 타오르고 있다. 11월 25일,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 1층, 2층, 3층... 지하가 끝도 없다."라는 자조적인 체념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던 한국영화계는 오랜만에 들뜬 분위기다. 최근 극장에서 개봉하는 모든 한국영화는 화려한 캐스팅, 유명한 감독의 대작일지라도 손익분기점을 달성하지 못했다. 늘 좌불안석이었다. 그런데 <서울의 봄>은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은 당연하지 않겠냐는 낙관적 전망과 함께 벌써부터 5시간짜리 디렉터스 컷의 개봉이 논의되고 있다.  

   사실 <서울의 봄>의 흥행은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역사 교과서가 스포일러다. 관객이 감정이입하고 잘 되길 바라는 주인공 '이태신(정우성 분)'은 처절하게 실패한다. 적대자이자 빌런인 '전두광(황정민 분)'은 대성공을 거둔다. 고구마 1백 개를 먹은 것처럼 갑갑하고 울화통이 치미는 결말이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스마트폰의 건강 앱이 측정한 스트레스 지수가 얼마나 치솟았는지 인증하는 챌린지를 벌일 정도다. 

   이런 결말이라면, 결국 영화의 성패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달려 있다. 최대한 뒤로 배치한 클라이맥스에서 관객이 응원하는 주인공 '이태신'이 실패하기 직전까지의 전개는 여타 대중상업영화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영화 <서울의 봄>은 자의적으로 최고 권력을 찬탈하려는 '깡패 같은 군인' 전두광과 그에 맞서 끝까지 대항하는 '참 군인' 이태신의 양자 대결 구도를 또렷하게 부각한다. 잘 알려진 대로 극 중 전두광은 전두환이고, 이태신은 장태완이다. 전두광 역의 황정민, 이태신 역의 정우성은 각자의 장점을 십분 살린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실제 역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객들은 '이태신이 꼭 승리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영화를 보게 된다. 두 주연 외에도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을 중심으로 한 조연들과 정만식, 정해인, 이준혁 등 특별출연 배우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출연진이 역사 속 인물들을 생생하게 소환한다.   

   '12.12 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밤 동안 대략 9시간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니 실제 사건을 141분의 러닝타임에 축약한 <서울의 봄> 속 시간은 역사보다 훨씬 더 긴박하게 흘러간다. 지루할 틈이 없다. 적절한 자막과 인서트 등이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 사격한다. 도심을 활보하는 군인과 서울 시내를 누비는 탱크의 육중한 기계음은 그날의 암울한 분위기를 실감하게 한다.  

   비록 전두환과 패거리들은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나 잘 먹고 잘 살았지만, 역사는 때로 반 보 후퇴할지언정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흘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디즈니플러스의 인기 시리즈 <카지노>에 등장하는 '정팔(이동휘 분)'이가 말했던 것처럼 "권무십일홍", 아니 "화무십일홍"이다. 요즘은 사회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서 "화무삼일홍"일지도 모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매일 뼈와 살에 새겨야 할 경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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