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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혁 Sep 03. 2023

[어느 멋진 아침] 쇠락하는 삶에도 사랑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하면 '낭만'을 떠올릴 것이다. 파리에 가면 수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에 등장한 멋쟁이 파리지앵(Parisien)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도심을 활보하지 않을까? 파리에 가면 끼니마다 정찬과 함께 삶과 예술에 대한 우아한 대화를 나누느라 3~4시간의 식사 시간을 가지지 않을까? 파리에 가면 사회경제적 지위와 통장 잔고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 눈만 맞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뜨겁게 사랑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파리에 살면 지루하고 힘들고 불행한 '현실'을 벗어나지 않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파리도 사람이 사는 곳이지, 유토피아가 아니다. 여행자로서 잠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상주한다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처음 파리를 찾은 외국인들이 파리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에 피해망상이나 우울증 등에 시달리는 '파리 증후군'이라는 정신질환이 있을 정도다. 파리지앵도 일상을 견디며 각자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살다가 병들고 언젠가 죽는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의 주인공 '산드라(레아 세이두)'는 파리에 산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후 통번역 일을 하면서 홀로 딸을 키우고 아버지를 보살피며 산다. 그녀의 연로한 아버지 '게오르그(파스칼 그레고리)'는 철학 교수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간하지 못할 만큼 건강이 나빠졌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애매한 사이였던 '클레망(멜빌 푸포)'과 산드라는 잠자리를 한 이후 서로의 육체를 쉼 없이 욕망하지만 클레망은 부인과 산드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삶의 끝이 코앞인 아버지, 무럭무럭 예쁘게 자라고 있는 딸,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이후 오랜만에 마음을 연 클레망을 향한 사랑이 산드라의 마음속에 저마다 가득하다. 건강이 무너져 가는 아버지 때문에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 산드라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클레망 때문에 서서히 차오르는 눈물,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딸 덕분에 짓게 되는 미소가 산드라의 일상에 소박한 문양을 새긴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은 주인공 산드라의 인생처럼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한 우리 삶의 단면들을 차분히 곱씹게 해주는 영화다. 쇠락하는 삶에도 사랑이 있다면, 그래서 매일 똑같은 출근길일지라도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유독 아름다워 보인다면, 우리 인생은 살아볼 가치가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은 9월 6일 개봉한다. (끝) 

* 8월 31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진행된 <어느 멋진 아침> 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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