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동화 7 :: 깍두기
각종 야채, 과일, 반찬들이 어우러져 사는 냉장고 아파트. 그곳의 지하 2층에서 흐릿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왜 나는 아무도 안 데려가는 거지?"
새하얗고 팔뚝 만한 몸뚱이를 가진 무, 무돌프였어요. 옆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당근, 홍당이가 귀찮다는 듯 말했지요.
"그걸 말이라고 해? 너는 맛이 없잖아. 모름지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나처럼 달달해야지."
거드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딸의 손이 들어와서 홍당이를 꺼내갔어요. 지하 1층에 사는 홍로과 함께 말이에요. 곧 윙윙, 냉장고 밖에서는 사과 당근 주스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주스의 달콤한 향기를 느끼며, 무돌프는 혼잣말을 이어갔지요.
"아, 나는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이그. 너는 맛만 없는 게 아니라 단단하기까지 하잖아."
사과의 옆에 얌전하게 앉아있던 귤, 상큼이가 새초롬하게 입을 열었어요. 날이 추워질수록 상큼이의 신기는 높아지고 있었지요. 껍질만 까면 쉽게 먹을 수 있는 데에다가 비타민 C도 많이 들어 있어서 감기를 예방하는 데에는 그만이었거든요. 그래서 '귤 떨어졌네.'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자주 구출되곤 했지요.
"네가 조금만 덜 알싸했더라도 도와줘 보는 건데. 나로서는 방법을 알 수 없구나."
상큼이와 인기 순위 1,2위를 다투고 있는 고구마, 구마구마. 구마구마 역시 '나 살 뺄 거니까 밥 주지 마요!'라는 목소리의 주인, 둘째 딸의 손에 들려 쉽게 탈출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무돌프는 냉장고 아파트 속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 주민들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 한 개가 있었어요. 그건 목소리는 들리지만 절대 냉장고 문을 열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것. 목소리 톤으로 봐서는 분명히 젊은 남자인데, 얼굴은 결코 볼 수 없었거든요. 주민들의 소문 밭에서는 그가 어린 남성일 거라는 추측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지요. 궁금증은 점점 커져서 '목소리의 정체를 밝혀라!'라는 프로젝트까지 만들어졌어요. 구마구마, 상큼이, 홍당이 모두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손을 든 상태였고요.
'모두 외투 챙겨 입고 가렴'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무렵이었어요.
"입짧은 우리 아들은 뭘 해줘야 밥을 먹으려나? 일단 김장부터 해보자."
벌컥 열린 냉장고 안을 훑고 지나가던 엄마의 손이 지하 2층에 가 닿았어요. '배추는 절여두었고, 오랜만에 아삭한 깍두기도 좀 해볼까?'라는 말과 함께 무돌프가 꺼내졌지요.
깍두깍둑 썰려서 소금에 절여진 무돌프. 그 위로 붉은 양념들이 누웠어요. 이윽고 붉게 물든 깍두기가 된 그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답니다. 몸이 잘리고 짠 양념들을 견디는 건 고된 일이었지만, 드디어 다른 반찬들과 식탁 위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오, 엄마! 이거 뭐예요? 알싸하면서도 서걱거리며 씹히는 게 완전 맛있어요!"
미스테리한 목소리의 주인공이었어요. 이 집의 막내 아들인 그의 칭찬이 이어지자 엄마의 얼굴에도 불이 켜졌답니다.
"이거? 깍두기야. 드디어 네 입에도 맞는 음식이 생겼구나!"
이후 냉장고 주민들은 이 집 막내 아들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식사 시간, 엄마가 반찬을 모두 내어놓기도 전에 먼저 와서 깍두기가 담긴 통을 꺼내갔거든요.
근사한 깍두기가 된 무돌프. 그를 위해 냉장고 주민들은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불렀답니다.
무돌프 몸뚱이는 단단하고 알싸해
만일 내가 봤다면 안 먹겠다 했겠지
다른 모든 과채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무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쌀쌀한 김장철 날 엄마 말하길
"무돌프가 아삭한 깍두기가 돼주렴"
그후로 야채들은 그를 매우 사랑했네
무돌프 알싸함은 길이길이 기억되리♪
#크리스마스_기념_동화
#루돌프_사슴_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