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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시 Dec 31. 2018

깨알 모험

음식 에세이 9 :: 쇠고기 청경채죽

3년 간 출퇴근했던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독한 길치이거든요. 하지만 그런 특성을 가진 탓에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른 바 '깨알 모험'이란 놀이예요.


정류장에서 한두 정거장 일찍 혹은 늦게 내린 후 집으로 걸어오기. 교통 카드 한 장만 달랑 들고 맨 처음으로 오는 버스에 올라타서 발 닿는 데로 가보기. 버스나 지하철 환승 시간인 30분을 지켜서 평소와는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환승입니다"라는 메시지 듣기. 우연히 만난 자전거 대여소에서 빌린 자전거 등에 타서 거리를 돌기 등이 그것이에요. 그렇게 다니다가 길을 잃으면 마치 외국 여행을 온 듯한 기분으로 거리를 구경하며 다니곤 했지요.


그러면서 새끼를 친 먼지 같은 모험들도 있습니다. 햇살이 좋은 날, 하늘을 쳐다보며 손바닥 가득 햇살을 쥐어보기.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풀밭 위에 누워 보기(물론 들어가도 되는 경우에만요 ㅎ). 털모자를 눈까지 내려쓰고 뜨개 구멍 틈 사이로 하늘 바라보기. 쭉 뻗은 길을 따라 눈 감고 걸어보기 따위였어요. 이중 가장 자주 했던 건 눈 감고 길걷기였는데요. 목표로 삼은 숫자를 마음 속으로 다 세고 난 뒤에 오는 티끌 같은 희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소소한 놀이들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시 정지 되었습니다. 아기가 뱃속에 있는데 눈을 감고 길을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렇게 멈춰있었던 깨알 같은 삶의 재미는 아기가 커가면서 다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요. 대표적인 게 아기에게 (저에게는) 생소했던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어주는 게 그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아기와 함께 하는 깨알 모험'이라고나 할까요? 그 모험의 첫 재료는 청경채였습니다.



쇠고기 청경채죽

    재료 : 불린 쌀 30g  쇠고기 10g  청경채 잎사귀 부분만 20g  물 200g  베이킹소다 약간

    도구 : 믹서, 이유식 냄비

    과정

        0. 쇠고기는 찬물에 담가 핏물 빼기, 쌀은 미리 불려놓기 (둘다 30분 이상)

        1. 불린 쌀을 믹서에 갈기 (물 30g과 함께)

        2. 물 100g과 함께 쇠고기 익히기 (육수 버리지 않기)

        3. 쇠고기 삶는 동안 베이킹소다 물로 청경채를 씻고, 잎사귀만 작게 자른 후 물 50g로 익히기

        4. 2,3을 함께 넣어 갈기 (믹서에 남은 것들은 물 10g과 함께 씻어서 담기)

        5. 4를 센불에서 끓이기 (끓으면 약불로 줄여 남은 물로 농도 맞추기. 미음처럼 체에 내리지 않을 것이기에 이전보다 더 오래 끓이기)

       


중식을 먹을 때나 간혹 만날 수 있는 청경채. 이 녀석을 아기에게 처음 먹일 때는 살짝 걱정도 되더라고요. '이걸 과연 아기가 먹을까?'라는. 하지만 걱정은 역시 걱정일뿐이었고, 아기는 청경채로 인해 초록빛으로 물든 소고기죽을 무척 맛있게 먹었어요. 그렇게 엄마가 된 후의 첫 깨알 모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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