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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Jan 07. 2023

앗! 흰머리가 나버렸다

  2023년. 예정대로라면 내 나이는 마흔이 되어야 맞다. 하지만 정부의 새로운 나이 셈법에 따라 삼십대로 조금 더 살 수 있게 됐다. 다만 세월은 유예 없이 내 몸을 관통하고 하고 있다.


  엄마는 젊어서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방을 치우는 일보다 본인의 흰머리를 뽑아주는 공력을 더 쳐줬다. 나는 앞머리와 귀밑머리는 두고 정수리와 머리 뒤쪽에 있는 흰머리만 뽑으면 됐다. 저녁이면 엄마는 세면대 거울 앞에 서서 족집게로 흰머리를 뽑았다. 흰머리는 한 번에 잘 잡히지도 않으면서 그 수는 날마다 늘어나니 엄마가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졌다. 위로 치켜뜬 엄마의 눈을 보고 있자면 내 눈까지도 시린 듯했다.


  유전 때문인지 둘째를 낳고 나서 새치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새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흰머리들이 이마를 따라 우후죽순 솟아났다. 내 머리카락은 한 올도 빠짐없이 잡아도 한 줌의 반도 채 안 된다. 얇은 머리카락 한 터럭도 소중했으므로 흰머리를 뽑는 대신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정도 흰머리를 자르며 눈을 올려 뜨다 보니 이마 중앙에 주름살이 길게 파였다. 아뿔싸! 큰일이 나버렸다.



  흰머리와 이마의 주름살을 가리기 위해 앞머리를 냈다. 그런데 이전에 가위로 잘랐던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뚫고 짧게 자라나며 존재감을 뽐냈다. 앞머리 한가운데에 잔디처럼 자라 흰머리를 뽑을 수도, 자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동네 목욕탕에서 한 아주머니가 머리에 바르는 걸 본 적이 있어서 ‘흰머리 마스카라’라고 검색했더니. 역시! ‘헤어틴트’라는 제품이 있었다. 요즘은 아침마다 이 헤어틴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엊그제 큰아이가 “엄마 귀 옆에 흰머리 많아. 뽑아 줄까?”했다.

  “아니 괜찮아. 흰머리도 소중해. 절대 뽑지 마(얘야. 흰머리도 생명이란다)"


  서른 후반 내 몸은 그렇게 흰머리로 노화의 선전포고를 해왔다.




  복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찾아왔다. 몇 년 전 가을, 소파에 앉아있다가 발을 내딛는데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져 아! 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가시가 박혔나. 처음 느껴 보는 통증에 얼른 발을 살폈다. 세상에 발꿈치가 갈라져 있었다. 겨울만 되면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발각질을 떼어내 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건조해지면서 두툼해진 각질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발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니 각질에 뒤덮인 발이 못 볼 꼴이었다.


  발각질 전문가 엄마한테 말했더니 핸드크림을 바르고 양말을 신으라고 했다.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었다. 난생처음 발바닥에 핸드크림을 바르고 비닐을 씌우고 양말을 신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해줘도 그럭저럭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심할 때는 발꿈치 각질로 이불을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한결 나아졌다.


  올여름 발등에 이유 모를 수포가 생겨 피부과에 갔는데 내 발을 보시더니 수포도 수포지만 각화증이 있다면서 연고를 처방을 해주셨다. 집에 와서 연고의 효능, 효과를 살펴보는데 “노인성 각화증 완화”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노인성. 노인성이라니. 이제 사계절 내내 맨발에 크록스 슬리퍼 하나로 살 수 없다. 날이 추워지면 양말도 꼬박꼬박 챙겨 신고 발에도 크림을 발라줘야 하는 나이가 됐다.




  보기에는 이래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어른들 말씀은 진짜였다. 청춘인 마음과 다르게 몸은 세월에 직격탄을 맞아 곳곳에서 노화 신호를 보낸다. 탄력이 사라지고, 주름이 지고, 살이 처진다. 전 같지 않은 몸매와 이마 주름, 눈가 주름, 팔자 주름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갈수록 이렇게 거울을 덜 보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할머니가 되어있겠지. 왜 어른들이 갈수록 사진 찍기 싫어하는지 이해해 버렸다.


  늙어가는 몸에 쿨해지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한다. 흰머리는 감추고 싶고, 기미와 주름도 가리고 싶다. 거울을 보며 손가락으로 광대를 잡아 살짝 끌어올려본다. 팔자 주름이 사라지니 제법 어려 보인다. 간단하게 팔자 주름을 없앨 수 있다는데 한 번 알아볼까? 이마에 보톡스 맞으면 주름이 더 깊어지는 건 막을 수 있다던데. 요즘은 떠다니는 시술 정보에 귀가 솔깃해진다. 쏘쿨은커녕 노쿨이다.


  친구들과 모이면 서로 요즘 어떤 약을 먹는지 이야기하고는 한다. 종합비타민, 유산균, 오메가 3, 루테인, 홍삼, 콜라겐, 프로폴리스 등등. 각각 종류도 다양하다. 생유산균이 어쩌고, 아이허브 어쩌고, 뉴질랜드산 어쩌고, 직구 어쩌고, 식물성 오메가 어쩌고. 사십이 가까워오니 아는 약도 먹는 약도 참 많구나. 이제 건강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웃고 떠들던 젊음은 유산균 계의 에르메스와 뉴질랜드산 프로폴리스에 살짝 기대 본다.


  약 이야기에 이어 좋다는 건강정보가 마구 오간다. 폼롤러 사라고? 그렇게 시원해? 하루 2리터 물 마시면 좋다고? 1일 1팩? 그래 뭐든 해보자. 이왕 늙는 거 이것저것 챙겨 먹고, 이것저것 해보면서 건강하게 늙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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