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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Sep 10. 2024

마흔은 그래도 돼

마흔에 교정을 시작했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갈 때면 휴대폰이 물에 젖을까 노심초사하며 사진을 찍고, 가방 어느 구석에 보관해 두고는 불안해서 자꾸 짐을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휴대폰 방수팩을 장만해야지 생각은 했지만, 물놀이를 자주 가지 않다 보니 잊고 또 잊으며 구입은 뒷전이었다. 얼마 전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갈 일이 있어 이번에는 꼭 사야지 싶었던 스마트폰 방수팩을 구입했다. 


  물속에서 들어가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사진에 담으며 짐짓 방수팩을 준비한 나를 칭찬했다. 다만 작렬하는 햇빛 때문에 비닐 너머의 스마트폰의 화면은 잘 보이지 않았고, 물기 묻은 손으로 화면 터치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물로부터 핸드폰을 안전하게 지켜주었기에 여행 내내 목에 걸고 다녔다. 




  짧은 여행 중 배를 탈 일이 있었다. 바다와 바람을 가르며 태평양을 만끽하고 있는데 파란 바다 위로 날치가 날아다녔다. 날치라니! 배와 같은 속도로 수면 위를 새처럼 날아다니는 날치의 모습에 감탄하며 날치의 휘황한 움직임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날 저녁 숙소에 돌아와 사진첩을 열어보니 날치는 하나도 찍혀있지를 않고, 날치를 보고 환호하는 내 얼굴만 찍혀있었다. 셀카모드로 찍은 것이다. 


  아래에서 찍은 내 얼굴은 눈뜨고 봐줄 수가 없는 세상 못난 추녀였다. 6학년 때 교정했던 이가 나이 들면서 틀어질 대로 틀어져 봐주기 힘든 지경이었는데 영상 속 추녀는 어찌나 입을 크게 벌리며 환호성을 지르는지. 평소에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정면에서 볼 때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45도 아래에서 찍은 내 이들은 각자의 원하는 뱡향으로 자유롭게 뻗어있었다. 처음에는 웃긴 표정을 보며 즐겁게 영상을 봤지만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눈을 감으니 들쑥날쑥한 이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집으로 돌아와 이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흔 교정', '마흔에 교정해도 되나요?', '마흔에 교정 시작하신 분' 


경험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누구는 후회한다고 적어놓았고, 누구는 하길 잘했다고 했다. 며칠간 밤늦도록 고민하다가 새벽 두 시쯤 거울 앞에 섰다. 40년짜리 내 얼굴과 40년짜리 이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교정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지금 안 하면 몇 년 뒤 나는 '그때라도 할 걸' 하며 후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마음을 먹고 나니 다음은 너무 쉬웠다. 다니던 치과에서 검사를 마치고 예약일은 잡았다.

며칠 뒤 고민을 나누던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철길 깔러 가"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잘했어. 사십은 뒤 돌아보지 않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


그래. 사십은 후회하지 않고, 철길도 깔 수 있는 나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체력도 있어.

지금이야!




쏘쿨하게 치과에 다녀온 날. 이와 잇몸에 이어 머리까지 이어지는 두통과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비주얼 쇼크에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엄마와 남편을 붙들고 질문을 퍼부었다.


"엄마 나봐봐. 교정한 거 많이 티나?

"자기야, 나 입만 보이는 거 아냐? 못생김 심해? 어느 정도? 1부터 10까지로 말해봐"

"엄마, 36개월 금방 가겠지? 3년 금방이잖아. 그렇지?"


엄마는 거울을 보며 오두방정을 떠는 내 뒤통수에 대고 일갈했다.


"수람아, 사람들은 너에게 아무 관심이 없어. 네 얼굴 보는 사람 없으니 마음껏 다녀라."


예, 어머니 그 말씀 잘 기억하고 따르도록 하겠나이다.

교정한 지 벌써 5개월이 다 되어간다. 가지런해지고 있는 이를 내놓고 거울 앞에서 씩 웃어본다.


그래, 하길 잘했다. 백세까지 예쁜 이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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