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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Aug 06. 2024

길에서 아빠를 만났다

여름 저녁 시골의 논길은 날벌레로 가득하다. 안경에 마스크까지 쓰고 별이랑 산책길에 나섰다. 하늘을 물들이던 노을마저 어둠으로 사라진 어스름한 저녁. 길에서 아빠를 만났다.


"빵!"


"아빠!"


아빠는 삼복더위에 모자에 안경에 마스크로 꽁꽁 싸매고 걷는 딸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아빠는 트럭을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 딸"


길에서 아빠와 마주치다니. 기쁜 우연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빠에게 뛰어가 안겼다. 말로는 밭일하던 옷이라며 더럽다고 마다했지만 아빠는 두 팔을 열어 나를 꼭 안아줬다. 나만큼 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눠주는 아빠. 그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사는 동네가 아빠의 텃밭 가는 길목에 있어서 가끔 아빠와 마주치고는 했는데 그날이 오늘이었다. 




아빠는 작업복 차림으로 새벽에 출근했다. 아빠의 푸른 작업복은 아빠가 사라지는 새벽과 닮아있었다. 아빠를 고용하는 회사는 '현장'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세계에 흩어져있었다. 아빠는 일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노동자였고 그만큼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엄마는 아빠를 깊이 사랑했고, 아빠가 없는 빈자리만큼 나에게 기댔다. '수람아, 수람아, 수람아, 수람아.' 엄마는 아빠를 부르고 싶은 순간마다 나를 불렀다. 나를 붙잡고 신세와 팔자를 한탄했고, 할머니 흉도 봤다. 아빠의 빈자리가 커질 때마다 나는 엄마의 걱정과 불안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일은 도처에서 숨죽여 있다가 아빠가 없을 때마다 이때 다하고 나타났다. 


나는 아빠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웠다. 아빠는 부재했지만, 아빠와 함께 할 때보다 더 사랑했다. 애써 사랑하지 않고는 텅 빈 마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아빠와 함께한 시간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고 나면 옆에 아빠가 있는 것처럼 가슴부터 등까지 따뜻해졌다. 아빠가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잊힐 시간이 없었다. 아빠가 나에게 남겨 준 것들은 여전히 온몸에 감각으로 살아있다. 뜨거운 여름 길 한가운데서 이루어진 후텁지근한 오늘의 포옹도 더해졌다.  


아빠가 나에게 남겨 준 말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말보다 포옹으로, 글보다 밥으로 마음을 나누었다. 밤마다 나와 동생을 안아 올려주던 거친 손. 무등을 타고 무서워서 아빠 머리카락을 꽉 쥐고 있으면 올라오던 시큼털털한 땀냄새. 굳은살이 두툼한 뒤꿈치로 내 배를 밀어 올려 비행기 태워주던 커다란 발. 아빠의 작업복에 찌든 연초 냄새. 뜨거운 숨을 내쉬며 까칠까칠한 수염 난 볼을 내 볼에 비벼 인사해 주던 밤. 나의 첫 생리를 축하하며 사온 생크림 케이크,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새우며 굴이며 낙지며 좋은 물건 사러 장이 서는 시장으로 나서는 아빠. 엄마와 나의 퇴근을 기다리며 고추장을 풀어 끓인 칼칼한 아빠표 된장찌개. 왁자지껄 모두가 웃느라 소란스러웠던 딸의 결혼식에서 눈물을 쏟은 나의 아빠. 




두 아이를 키우며 온갖 이름의 육아법을 얻어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비법과 지침이 참 많기도 했다. 배운 대로 아이들에게 칭찬도 했다가 공감도 했다가 어느 날은 무시도 했다가 따끔하게 훈육하기도 했다. 어떤 육아법을 가져와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기만 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치우면 8시쯤이다. 그 사이 아이들 씻기고, 머리 말리고 숙제까지 챙겨야 하는데 눈 깜짝하면 9시가 된다. 정신 차려보면 나는 아직 세수도 못한 채로 있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며 소파에 쓰러져 누워있는데 아이들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구멍에 감자 한 알만한 울화가 솟구쳐 오르기 직전이다. 그날은 둘째를 배 위에 올리고 함께 누웠있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우는 둘째를 꼭 안아줬다. 한참을 울던 둘째가 눈물을 그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꺼내놓기 시작했다. 


언제 이렇게 아이를 오랫동안 안아준 적이 있었나.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포옹 한 번이 아이와 나 사이의 유대감을 일깨워주었다. 과오를 판단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함께 누워있었을 뿐인데. 이게 바로 내가 아빠한테서 받은 사랑이었는데.




마흔이지만 엄마 아빠 앞에서 만큼은 철든 어른 행세를 하고 싶지 않다. 거실 한복판에 널브러지고 싶고, 엄마 냉장고를 열어 뭘 꺼내먹을 게 있는지, 가져갈 반찬이 있는지 행복하게 기웃대는 철없는 딸이고 싶다. 30년 뒤 나의 아들 딸도 그러기를. 다 큰 딸과 사위가 집에 들어서면 안아주고, 흰머리가 가득한 자식들이 여전히 예쁜 것처럼. 


소탐대실하지 말아야지. 아이들 몰아세우지 말아야지. 눈앞의 성과 집착하지 않고, 따뜻한 집을 만들어야지. 많이 안아줘야지. 돈으로 시간을 사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해야지. 남편과 잘 지내야지. 건강관리 잘해야지. 나부터 자신감을 가져야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한 여름 아빠와의 포옹으로 시작된 육아 다짐이다. 오늘부터 실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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