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산 지 십 팔 년째.
내 나이는 사십.
레스토랑 서버로 요리사로, 바에서 바텐더로, 번역도 해봤고 회사에서도 일해봤고 공장에서도 일해봤고 농장에서도 일해봤고, 한국 필리핀 캐나다를 거쳐 오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헤어졌다.
상상하는 여자 집필 언 십 년째, (ㅎㅎ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고!!!) 이제 정말 몇 편 안 남았는데.. 꼭 써야 할 이야기는 써야 하니깐,
그래서 쓰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
캐나다 생활 시작 처음 몇 년은 남편에게 그렇게 집착했었다.
의지할 데라곤 남편(당시 남자친구)뿐이었고,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캐나다 어느 시골에 살며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을뿐더러 운전도 못해 어디 나가지도 않았고 그 사람의 친구, 가족들을 보는 것이 다른 사람을 보는 것에 속했다.
그러다 아이를 낳았고, 면허를 따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살림을 도우려고 일도 하기 시작해 남편의 굴레를 벗어나 나만의 인간관계를 쌓기도 시작했다.
그전 한국에서 산 이십 이년. 그곳엔 친구가 늘 있었다.
연락할 사람도 많았고 원한다면 늘 약속을 잡아 만날 친구들이 있었기에 친구가 부족하단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은 없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고 다른 가족들과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성장한 덕분에 늘 교류해 난 가족들 모두와 친구같이 편안한 관계로 지내고 있었기에 캐나다에서 나름대로 정착을 마치고 남편에 대한 절대적 정서적 유대감도 차차 덜해질 때쯤이 되자 나도 나만의 친구가 고팠다.
마음도 맞고 성향도 맞아 잘 지내는 친구가 있다가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야 하는 일이 생겨 이사를 가 버리거나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거나,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게 왔다 짧게 가는 친구들이 반복되자 나처럼 캐나다 사람이랑 결혼해 아이들을 낳은 한국 친구들이 생긴다면 어떨까, 란 생각을 했고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 그런 희귀한 케이스가 설마 또 생길까 싶었지만 우연찮게 동네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캐나다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한국여자사람'을 지난 칠 년 정도 안에 네 명 정도를 만나게 되었다.
장 보러 나갔다가,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에 애기 용품 내놓고 팔려다가,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게 된 나이도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동네에 산다는 공통점을 이유로 그렇게 내가 서로 소개해주고 만나 서로 밥도 먹고(주로 내가 해주고) 남편들과 자식들 다 모여 술자리도 만들고 (대개 많은 경우는 울 집에서 했음) 친목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그중 제일 늦게 만난 사람 Y(이민을 가장 최근 들어옴, 2년 이내)는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런 건지 몰라도, 혹은 외로워 그랬는지 몰라도 솔직히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뭐랄까, Love Bombing이었달까?.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친해지자고 종용한단 느낌이 들 정도로 칭찬을 날리고 만나자고, 뭐 하자고 연락을 보내오고, 다른 사람들과 모여 술자리를 가질 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남들 앞에서 내 칭찬을 날리고는 했다.
그러다 작년(그 사람을 만난 건 작년 초) 여름, 그 사람의 가족들이 한국에서 오게 되어 바빠 잠시 못 만나고 연락이 뜸하다 다시 연락을 취하자 연락도 받지 않고 내가 소개해줘 다니게 되었던 같은 유아원도 끊어 버렸는지 나오지 않아 연락이 아주 끊겨 버렸다. 그 사람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끼리 모여 술자리를 갖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고 무엇보다 걱정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중 한 명인 H가 나에게 그러는 것이다.
"네가 뭘 잘 못하거나 말을 잘 못 한건 없고?"
내가? 그 사람이 혹시 너무 나랑 빨리 친구 하려고 그래서 내가 중간중간 조금 경계한 게 불쾌했나? 내가 잘해 줬음 잘해줬지, 못해주거나 안 해준 게 있어 어딨어? 하다가도.. 아무리 삐지고 성나도 성인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모두에게 연락두절? 이 조그만 동네에 어디 사는지 뻔히 다 아는데? 뭐 하는 사람인지 어디서 일하는 사람인지 다 아는데?
그 말을 물어본 친구의 의도도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그렇게 사라져 버리기로 다짐한 그녀에게, 아무와도 연락을 취하지 않고 페이스북도 나를 블락을 했는지 그녀의 프로파일도 보이지 않길래 사실 무엇보다 걱정이 제일 앞섰다. 남편과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쌍둥이를 낳아 키우고 있던 사람이라 혹시 아이 낳고 우울증이 걸려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닌지 (난 산후우울증이 심했기에), 집 앞에 텃밭에서 키운 야채로 만든 반찬과 편지를 두고 오기도 했다.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몰랐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무언가 잘못해 그녀가 화가 나서 그런 건가.. 괜히 자책감도 들었고 세상에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답답하기도 했다. 아니 그렇게 친하게 지내자고 미친 듯이 달라붙더니 뭐지? 란 생각도 들고.
그러다 난 작년 2023년 가을, 딸과 둘이 한국에 잠시 다녀오게 되었고 한국에 있는 절친들과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이곳에서 사귄 친구 그룹과 다 같이 만나 다시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작년 한국의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가족 출연을 할 뻔하게 되어 혹시 촬영을 하게 되면 울 집에서 모임 갖는 거 찍는 건 어때?라고 물어보니 분위기가 싸해지며 "넌 아무것도 아닌 애가 별 걸 다 한다..." 하는 눈빛으로 제 각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아니, 아니..."를 외치는 사람들.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얼마 전 다녀온 한국에서 만난 찐친들과의 술자리에선 실없는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울다가 웃어도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바로 돌아와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처음으로 이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 아닌 것 같아...라는 씁쓸한 생각만을 남기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왠지 그 사람들 모두와 점점 연락이 얕아졌다.
내가 굳이 연락 안 하고 초대하지 않고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나에게는 굳이 먼저 오지 않던 연락.
마음이 있음 자기들이 하겠지.. 했는데 내가 연락을 먼저 안 하니 나에겐 돌아오지도 않는 연락에 곱씹어 보니 나는 기갈나게 챙겼던 그 사람들의 아이들의 생일들. 그 외에도 가끔 한식 하면 나눠주려고 싸다 주고 데려와해 먹이고 아무리 또 해 먹여도 고맙단 소리도 없이 늘 싹 입 닦는 사람들.
하지만 다들 바쁘게 사니 내 아이들 생일에 못 와도 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했던 것들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깨달았고, 그래도 서로 많이 만났지.. 시간 많이 보냈지..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기들 시간 날 때 혹은 점심밥 한 끼 간단하게 해결하고 싶을 때나 나에게 연락해 점심시간 한 시간 내 집에 와 내가 해준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고맙단 말 없이 사라지는 것이 대개 우리의 만남이었고 그간 난 절친이라 생각해 털어놓은 어려움이나 고민들이 그들에게는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는 뒷소리, 그리고 나의 약점이 되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년 한 해를 마치기 전 난 아직도 십 대 때처럼 내년용 다이어리를 사 그 해에 제일 집중하고 싶은 부분을 첫 페이지에 적는데 2024년도의 목표는 그거였다.
Me First.
-나를 위한 선택을 먼저 하자. 나를 선택하자. 나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자.
인생의 등대 같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와중 막내를 임신했는데 임신하는 열 달 내내 입덧을 했고 그 아이를 낳고 코비드라는 조금 특수한 생활환경 안에서 그간 아들의 엄마로 살며 조금은 딱딱하고 어쩌면 약간은 사감학교 선생님 같았던 내가 '딸'이라는 또 다른 특수한 생명체에 대한 다른 책임감과 필요를 느끼면서 생각해 보니 좀 많이 뭐랄까, 말랑해지고 부드러워졌달까? 그러면서 그간 사는데 급박해 스케줄에 맞춰 사느라 그 스케줄에 애 들고 맞춰 끼고 사느라 늘 강압적이던 엄마였던 내가 보였고 그러면서 사춘기에 진입한 큰 아들과 정서적으로 많이 멀어져 있었던 것도 보였고 내 품 안의 작은 딸을 보며 내가 이 아이에게 가르칠 수 없는, 가슴에 품어줄 가장 큰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어느 날 유치원에 입학하는 딸이 학교에서 작성한 종이쪽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았다.
딸아이는 I Love.....라고 써져 있는 란에 'Me'를 적어 놓았었다. (물론 선생님께서 도와주셨겠지? 만 셋.)
큰 아이는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슈퍼맨을 썼었고 둘째 아이는 엄마, 장난감, 집 뭐 이런 걸 적었었는데 '나'라니. 참신하게도 옳다. 그렇지, 나를 제일 사랑해야지.
가족 안에서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누군가가 주는 사랑을 쫓아오다 보니 캐나다에 오게 된 것이고
캐나다에 와서도 남편 만을 바라보다 그게 안되면 남편에게 화내고 실망하고
그러다 아이들을 낳아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먹고살아야 하니 일을 해야 해서,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바빠서,
남편이 돈 좀 더 벌어오기 시작하자 막내를 낳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이 사회고 남편이고 다들 일하는 주위 사람들 옆에서 모지리처럼 보이는 일이라 생각해 아침 다섯 시 반부터 밤 열두 시까지 노예처럼 완벽한 살림을 하려고 혼자 아등바등 버티다 공황이 오면서부터는 왠지 작아 보이는 내 자신의 열등감에 그저 한결같이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적대심을 일궈 만들어 계속 싸웠고,
단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내주었던 내 곁, 외롭다고 생각해 내가 휴게소도 아닌데 아무 사람에게나 다 베풀었던 정을 얼마나 헤프게 봤을까, 친구라고 생각해 진심으로 뱉은 고민들이 내 험담이 되는 줄도 모르고 한 하지 말았어야 할 남편 욕은, 흠 없는 남편을 그 그룹 안에 있던 남편들 중 제일 잘 살고 인물도 낫고 열정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모지리로 만들어 놓았고 덕분에 생긴 남편과 나의 적대감으로 이혼을 한다 안 한다 소리까지 나왔었는데
2024년도에는 딴 건 모르겠지만 나를 위한 선택을 많이 하는 한 해를 보내겠다고 다짐한 것이 시초였다.
그렇게 작년 말 나는 많은 것으로부터 힐링하려고 많이 노력 중이었고 그렇게 생각하고 난 뒤로는 그 한국인 그룹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
나를 선택한다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고, 주중에 일을 많이 해 주말에 최대한 남편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애 셋을 맡기고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은 왠지 즐겁기보단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 마음이 든 상태에서 만남을 가지고 나니 일을 하지 않고 살림을 하는 나와 자신의 삶을 비교해 말하는 그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넌 집에 있으니 시간이 있어 텃밭도 기르고 꽃도 기르지,
-집에 있는 애가 가끔 내 애를 왜 못 봐준다는 거야?
-아무리 남편이 잘 벌어도 네가 일 안 나가면 너만 손해야.
-모유수유가 아무리 좋아도 이년 넘게 하는 건 너나 힘들지.
-정말 애를 편하게 맡길 데가 하나도 없는 거야?
-남편한테 애 맡기고 우리들끼리 나와서 술 마시는 게 왜 불편해?
전엔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고 묘하게 그들의 조언을 듣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단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업을 옮긴 이야기가 나왔다. 직업을 다른 데로 옮기기까진 캐나다에서 제법 많은 프로세스를 걸쳐야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옮기는 데엔 또한 절차가 있기에 시간이 필요했을 일인데 나만 까마득히 모르는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아, 나만 저 사람들과 연락이 없었던 거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순간 나는 그 그룹에서 왠지 이간질당하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 어, 직장 옮긴 게 내가 얘기 안 했어?"라고 되묻는 그 사람에게 웃어 보이며 생각했다.
' This shit can't possibly last long. '
친구라고 믿으며 의존했던 마음을 떼고 보니
네 명의 사람 중, 두 명은 최근 이년 안에 만난 사람이라 만나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 생각했고
한 명은 참 서로 챙겨주며 잘 지내던 적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최근 몇 년 들어 내가 점점 잘 살게 되면 잘 살수록 내 삶을 비꼬듯 이야기하고, 내 외모, 남편에 대해 시니컬한 조크로 코멘트를 달거나, 내 자식들 생일파티엔 잘 참석도 안 하던 경제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살던 H와
무난한 성격으로 늘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지만 자식들이 조금 사고를 치던 그나마 제일 친하게 지내던 A와는 어떻게 관계를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H와 A의 자식들이 서로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둘 사이가 제법 돈독한 것을 알고 있기에 둘 중 하나만 만나려야 그럴 수도 없다란 생각이 들어)
그렇지만 올해 초 용기를 내어 A에게 최근 내가 그 다른 친구에게 느끼는 바를 설명하고 고백하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 친구는 어떻게든 내 곁에 남겨두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 뒤로 그 친구 A와도 연락이 점점 줄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한치도 모르겠다 싶었을 때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자기 딸 생일잔치를 연 것을 페이스북에 포스트 한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물려준 내 딸의 옷을 입고 나는 초대되지도 않고 연락도 받지 않은 생일파티에 나머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자식들까지 다 나와있는 사진들 몇 장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사진들 몇 장으로 참 많은 것이 설명되었기에,
무엇보다 나는 내가 모르는 이유로,
나는 그간 친구도 궁했고, 한국사람들이 만나고 싶었고, 나란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대가 없이 퍼 주었고, 그 사람들 모두 어떤 상황에 있든 평가하지 않고 진심으로 친구로 대했는데 이 꼴이 난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그 모든 사람들에게?라는 죄책감도 더불어 느끼며 난 무언가 잘못된 사람인가?라는 생각 속에 고된 잠을 자고 일어난 어느 아침이었다.
그 어느 아침에
늘 있는 일처럼 커피를 내려 뒷마당으로 나가는 길인데 집 펜스 포스트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진짜 귀청 떨어지게 그리 가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까악, "하고 울어서 커피를 쏟을 뻔했다.
그래서 정신이 아침부터 바짝 들게 되었는데 기분에 왠지 '레드썬!' 했다가 주문에서 풀어지는 것처럼 갑자기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그 생각이 들었다.
'They don't deserve me.'
-그 사람들은 나의 우정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계속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 나.
그 사람들과 취향도 생각도 분명히 다 다른데 똑같다고 생각하려고 그 사람들 틈에 껴서 맞장구쳐 주던 병신 같은 년, 나.
분명히 내 뒤에서 뒷소리 하는 것 같은데도 내가 뭐? 하면서 못 본 척 한 바보 같은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늘 똑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 되지도 않는 조언을 고맙다고 얘기하며 굽실댄 허리뼈도 없는 것 같은 나.
내가 무슨 공공휴게소도 아니고
휴게소이면 돈이나 받지, 매번 울 집 와서 약속도 없이 뭐 해 먹이고 해 갖다 주는데 고맙단 소리도 못 들으면서 병신처럼 계속 갖다 주면 그걸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게? 다 이용해 먹지. 아이고 병신, 병신.
난 그렇게 똑똑한 척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선 싫단 말 잘 안 하고
내가 좋은 사람인 걸 꼭 증명이라도 해야 된단 생각이라도 한 거 마냥 다 받아주고 다 지켜주고
뒷 소리 하는 거 다 보이고 다 느껴지는데 그 와중에도 개새끼도 아니고 복종할 친구 모양새로 보였을 생각을 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다 잘라버려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이 관계의 매듭은 좋게 짓는 수가 아무래도 없다.
그럴 바엔 어차피 미친년, 미친년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쏟은 커피를 그냥 두고 집 안으로 들어와 페이스북부터 시작해 인스타그램, 핸드폰에 남겨진 연락처, 카톡 연락처를 다 지우고 블락을 시켰다.
어차피 나한테 연락 안 하고 있을 테니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알아차리고 나서도 그 사람들은 왠지 내가 그런 방법을 써 연락을 안 받는 걸 알면 어이없어하면서도 찔리는 게 다들 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난 상관없다. 길거리에서 보더라도 눈 똑바로 쳐다보고 응, 안녕하고 그냥 지나칠 것이기 때문에.
나에겐 그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 곁을 내 줄 필요가 전혀 없다란 생각이 들자 그간 쌓아온 시간이 아쉽네, 그래도 친구였는데... 뭐 이런 생각도 하나도 남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를 그런 상황과 코너에까지 몬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존경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내가 2024년도를 위해 다짐했던 대로라면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한 해를 보내기로 했다면
그런 친구란 가면을 쓰고 내 에너지를 소모하려는 에너지 뱀파이어 같은 인간들과 상종하는 일은 깨끗하게 마무리지어야겠단 생각이 들어 그랬다.
나의 과거와 나의 이야기와 나의 신념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막내를 낳고 내가 감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 지난 몇 년 동안 그 그룹의 사람들이 친구란 이름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었지?
-Absolutely Zero
내가 퍼주고 이해하고 노력한 모든 일들마다 돌아온 건?
-Absolutely Zero
난 텃밭을 기르고 정원을 기르며 늘 그 생각을 한다.
Where I put my energy and love and effort, it blooms.
내가 사랑과 관심을 갖고 에너지를 쏟는 곳에 꽃이 핀다.
아쉽고 슬프지만 내가 쏟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고 있었음을 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들과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정답이란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곤 다신 뒤돌아 보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나이니깐.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나는 가끔 일을 나가면서 살림을 열심히 하고 있고 집에서 글도 쓰고 텃밭도 가꾸고 아이들을 열심히 돌보고 있다.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쌓아왔던 남편은 알지도 못할 적대감을 풀자 남편에게 더 기댈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고 그 삶 속에서 평화로운 나를 발견했다.
음식을 만들어 나와 내 가족들을 먹이고 남은 것은 저축하고
나와 내 가족들에게 더 시간을, 마음을, 생각을 주자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 힘들다고 생각했던 큰 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이들이 쓸데없이 나와 함께 하려고 농담도 주고받게 되는 사관학교 담임과 아이들 같은 엄마와 아들 사이에서 편안한 옷을 입은 느낌처럼 아주 가까운 모자 사이가 되었고
집 안에서 살림하고 청소하고 육아를 하는 것에 '내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되어 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비교당하며 위로받지 못하던 내 삶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그 친구들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얘기하니 그런다.
"친구들 필요하다며."
"날 갉아먹는 애들은 친구들이 아니야, 필요 없는 부분이라 뗀 거야."
남편은 그 뒤로 묻지 않는다.
나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 없이 성장해
외국에 나와 아이를 키우는 마흔의 한국 여자.
밖에 나가 일하며 돈 벌라면 할 일은 많고
직업은 뭐든 구할 자신이 있으며 할 능력도 있다.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내 존재의 가치와 능력이 제일 존중받는 곳과 사람들은 내가 만든 내 가족들이다.
아이를 맡기려야 맡길 곳도 없고
남편은 전쟁터에서 홀로 나가 적군을 맞서 싸우듯 홀로 돈을 벌어 오고 있다.
남편과 나는 인생 파트너.
지금 내 삶의 포커스와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들어가야 할 곳은
나와, 내 파트너, 그리고 내 아이들, 내 새끼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내 신념대로 살 것이다. 그래서 내 새끼들은 남한테 안 맡기고 내가 키운다.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자식들이 제 몫 감당하며 사회에 나갈 수 있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나의 몫, 난 그것을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 생각하며 십자가 지듯 내가 지고 오르겠다고 생각한다.
아픈 아이를 이리 데리고 저리 데리고 다니며 일하는 동안 보아달라고, 첫째 둘째를 키우며 많이 고생했다.
감사하게도 셋째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남들에게 구걸하지 않고 내가 직접, 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인데 돈 몇 푼 더 벌자고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보내고 저녁밥 한 끼 겨우 같이 먹어가며 보내는 삶에 만족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마음. 지금 당장 일터로 복귀해 뭔가 하고 돈을 벌지 않으면 마치 직업과 영영 안녕을 고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일도 중요하고 나의 욕망도 중요하지만 난 일단 내 새끼들을 내가 키우며 나를 돌보기로 했다 과감하게.
누가 뭐 래든.
그래서 요새
내 새끼는 내가 키운다.
그것도 아주 잘.
그리고 나는 나를 선택했다.
그것도 아주 잘.
후회되는 결말로 남은 관계를 누군가와 맺었다 생각해 후회되기도 했지만 관계의 끝에 남는 레슨은 제법이다.
나와 내 가족들에게 더 집중할수 있게 해준 관계, 아쉽지만 배운 것이 남지 않았는가.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When in Doubt,
Choose you.
Always.
The cost of loosing you is way greater than loosing fake friends.
I still respect who they are, what they were at certain times of my life,
but can’t no longer accept the little change of gratitude.
so I respectfully exit myself, my presence from them without explanation. because explaining, defending or offending is never nice.
i have no desire for drama but peace.
and they weren’t that.
surround yourself with people who gives a piece of mind, not chaos.
and you don’t need to explain every little detail to everyone but yourself.
Choose you.
and live your authentic life
is all you can do.
받은거 없이 외톨이로 자라 커리어 우먼이 되어 혼자 잘 살고 잘 먹는게 꿈이던 내가 커서
세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의 삶을 나의 삶보다 무겁게 지고 키우려는데
사회와 주위의 편견, 기대 속에 일터에 남아 육아를 하지 못하는 여성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집에서 육아한다면 덜 떨어져 둘 다 못하는 부능력자라 고려하는데
여성이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든 서로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서로 보탬이 되는,
질투없이 서로를 위로 끌어 올려주려고 하는
유토피아를 꿈꿔보지만
육아든 일이든 뭐든 잘할수 있는
나는
지금은,
내 새끼들을 내가 키우고 있다.
그리고 잘하고 있다.
엄마가 엄마일을 하는 것이 여자로 왜 무너지는 일인가?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아이들이며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이다.
후회는 없다. 난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엄마라는 일을 감당하는 것.
빨래하면서 욕하고
설거지하며 짜증내도
내가 덤덤히 다 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여전히 글까지 써 가면서.
그렇게 나는
여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And now
I’m fucking really focused.. Be awa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