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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Apr 06. 2024

일기

말도 안 되게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사실 어떠한 상황 때문에 극도로 기분이 좋거나 혹은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 때문에 흔들리는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라봐주고 언제나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 덕분에 나는 내맡기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사하다.


내맡긴다는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내맡긴다는 건, 믿고 맡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나서서 너무 많이 확인하지 않고, 내가 간섭하지 않고 정말 자유롭게 맡겨서 나를 통하여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점들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사회에도 이롭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에게 이로운 점들 투성이다.


내맡겨도 아픈 일들은 계속 있다. 그런데 나는 그냥 그것도 하늘의 어떤 뜻인가 보다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소원이 있다기 보다는 내맡기고 세상의 뜻을 따른다. 내가 이해하는 것 보다 더 신기한 방향으로 삶이 나를 인도하는데, 예상치 못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오고 나는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아 먹는다.


할머니는 여러 사람으로 둔갑해서 나에게 계속해서 온다. 그러고 내가 믿기지 않는 순간에 본인의 자취를 남긴다. 17. 계속해서 신뢰하고 안심하라는 말을 하고, 내가 제일 혼자라고 생각이 들어서 어떠한 안정감도 없었을 때의 아픔들을 다 치유하고 보상받는 듯, 요즘엔 문득 할머니에게 더 고맙고 유럽에게도 너무 고맙다. 나 사랑해줘서 고맙다. 생이 다 해도 내 곁에 언제나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게 알고보면 그 중간다리의 역할을 해 주었던 경험이 많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왔던 귀인과 스스로 해내라는 세상의 말,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온 짜증나는 상태의 사람, 온전히 이해하니 그 사람의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맥락들,


끝나기 위해서 다가온 악연 같은 인연, 하지만 가까이 둘 수는 없어도 재차 뜻은 있다는 걸 알면 일단 멀리 바라보고 내가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둔다.


나는 간절하다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사람이 간절해지면 잃어버릴 것들만 바라보게 되고 잃어버리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이 기초 베이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을이 되고, 어찌저찌 용케 얻어내더라도 금방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그것에 대한 집착만 커진다.

그래서 무언갈 간절하게 바라지 않는다.


놓아버리고 내려놓는다는 건 그것에 무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본인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라는 뜻이다.

사람은 어떠한 모양의 형태로 각각 태어났고 그것은 한 가지 단어로 정의내리기 힘들 정도로 입체적이고 어쩌면 정말 다들 개개인이 독특한데,

동시에 그것이 단점처럼 보이더라도 어딘가 쓸모가 있다.

그것에 대하여 가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다면 사람은 여유가 생긴다.

기다릴 줄 알고, 차분하게 아무렇지 않게 나의 것을 가진다.

화를 내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설득하지 않아도 되고,

구차한 장식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잘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으며,

자기 스스로의 행위를 합리화 시킬 필요도 없이 온화하다.

많은 것들을 설명할 필요 없이 침묵 하나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고 그렇게 설득당하길 바라지도 않게 본인의 길을 간다.

관심을 바라지도 않고 관심이 없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획득하는 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할지에 관하여 집중한다.

누군가를 사랑할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편안하게 대하고 그것에 대하여 생색하지 않으며 본인의 단점에 대하여 단점으로 치부하지 않으며 굳이 들어내지도 않으며 굳이 감추지도 않는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아무렇지 않게 주장하며 그것에 대하여 쟁취할 대상이라 여기지도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한 순간 한 순간 단계를 밟아가며 일을 처리하고,

굳이 바쁘거나 게으른 상태가 아니라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할지 안다.

가장 차분하고 느리게, 동시에 한 번에 완벽하고 빠르게 본인의 일을 해낸다.

해낸 뒤 스스로 잘났고 해냈다고 자랑하지 않고 다른 이의 덕으로 돌린다.


요즘에 나는 그냥 감사하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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