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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Jul 19. 2024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 What love tells

LENT, PAISIBLE, BIEN RESSENTI 느리고 평온하게, 감정을 풍부히

양자역학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그것에 대하여 무어라 명확히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학문이지만, 삶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면서 그 이론들과 부합하거나 혹은 은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양자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큐비트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일제히 같은 모드로 진동하도록 배열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태를 '결맞음coherence' 이라고 하는데, 원자는 워낙 작고 예민한 물체여서, 외부로부터 불순물이나 교란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면 그 즉시 원자의 배열은 결어긋남decoherence(결깨짐) 상태로 붕괴되고, 계산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바로 이것이 양자컴퓨터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결맞음 상태가 지속될 수 있을까? 결맞음 상태를 일상생활에서 무어라 비유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큐비트의 속성, 개념들을 나의 상상력을 유입시켜 여러 문화예술, 그리고 삶에 적용시켜 보았다.

   한 예시로, 최근 나는 '17'이라는 숫자가 내 삶 속에 다가왔음을 느꼈는데, 17이라는 상태의 숫자가 내 앞에 다가올 때마다 어떠한 현상을 관찰하곤 했다. 그러한 일정하고 유사한 상태들이 여러가지 연결성을 가지고 가능성의 상태로 줄지어서 이어진다는 걸 느꼈고, 그것이 마치 양자 역학의 결맞음 상태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여서 그 숫자와 은유를 영상에 삽입하여 작업에 임하였다.


   그리고 어떠한 생각들이 일어나서 그것들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관찰하여 실생활에 이루어내거나 혹은 행동해 내는 걸, 원자들의 중첩에 은유하고자 하였다.

   즉, 여러가지 가능성 속에서 관찰자가 관찰(관측)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그 순간 파동함수가 붕괴(collapse)되면서 전자의 상태가 하나의 값으로 결정되는 현상을 나타내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관찰자의 행위를 통하여 볼 수 없는 모든 방향으로 무한하게 확장되는 확률 파동이 상태가 변화됨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물질 stuff'로 가득 채워진 우주라는 개념보다는 '물질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우주라는 개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즉, 변형'transformation'이야 말로 우리가 항상 보는 물질, 외형적 겉모습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이 속에서 어떠한 방향성이나 혹은 연결성 등이 있을 지 항상 고안해내고 있다.


   이 때에 양자 결맞음, 즉 양자들이 파동처럼 결이 맞는 현상과도 같이, 우리의 삶에서 또한 여러가지 의식적인 선택들로 인하여(무의식적이지 않은, 주체적인) 여러가지 갈래의 결이 형성된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 현상 자체는, 힘을 온전하게 빼고, 즉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느리고, 평온하게, 감정을 풍부히" 한 상태에서 "언제든 변치 않는 자신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가지는 것을 "중첩"과 "양자 결맞음"이라는 현상에 은유하여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반야심경의 지문, 즉 반대되는 두 가지 양상에 대하여 "모든 것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상태"의 이중적인 상태에 대하여 간파하는 지문을 이 현상에 비유하여 표현할 수 있다.

   즉, 공의 상태, 무한적으로 비어있을 수도 있고 채워져 있을 수도 있는 이러한 모순적인 가능성의 상태를 중첩원리에 비교하고 비유하고자 하였다.

   또한 '타르'라는 음악 예술 영화를 예시를 들어서 이 현상을 설명하고 비유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타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운비트에요, 음악이 끊기죠? 저건 8분음표로 시작되지 않죠. <그래서 누군가가 시계를 켜 줘야 해요(지휘자의 역할)>여러분이 뭔가를 담아서 음악을 지휘할 때니까. 모두 아는 음악이지만 매번 다르게 들릴거야(감정을 풍부히.) 여러분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결국 "영혼이 자신이 있을 곳을 선택한다." 잖아."


   여기에서는 광자가 가는 경로를 관측하는 것만으로도 간섭이 사라지고, 심지어 관측을 하지 않아도 마치 광자가 지나가지 않은 쪽의 '출구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광자가 경로를 바꾸는 실험을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지문이다.


   또한 '나'라는 작업자가, 즉 박하리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마치 여기에서 지휘자의 역할처럼 관찰을 하여 행위를 하고, 그것을 통하여 비어지거나 채워져 있는 가능성 속에서 나의 길을 찾고 결을 찾는다는 의미로 비유할 수 있다.


또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의 주인공 '티모시 샬라매'가 스스로를 무적의 혜성이라고 칭하며 당당한 모습을 뽐냈으나, 결국 마지막 쯤 나레이션에서 "그는 무적의 혜성이 아니다."라는 반대(모순)되는 구절, 그리고 그의 사고사로 인한 어이없는 죽음의 지문을 중첩의 개념을 빗대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위의 이미지는 한 여성(박하리)가 퍼포먼스 공연을 시작했을 때의 처음 옆 모습, 그리고 마지막 옆 모습의 수미상관 관계의 시퀀스를 삽입하여 표현하고자 했는데, 한 가지 현상 혹은 언어에서 여러가지의 가능성들이 한번에 존재함을 가시적으로 레이아웃해서 표현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양자의 결맞음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여러가지 원자들이 나열되는 행태를 삶에 비유하여 결국 "영혼이 자신이 있을 곳을 선택한다."라는 말 처럼,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온전히 평온한 상태로 느리고 천천히, 그리고 삶을 만끽하면서 지금 이 순간들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언제나 마땅히 있는 대의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마치 프렌치 디스패치의 허무하게 죽은 티모시 샬라매의 다음과 같은 대사와도 같이.



" Quelle était notre cause? "

"우리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


   큐비트의 결맞음에 비유했을 때, 그러한 불확실하면서도 어떠한 연결성을 지니는 까닭은 결국 모든 이러한 기이하고 놀라운 이론과 행위들은, 사랑에 의해서 그러한 것이지 않을까?



(이 글의 이론적 배경은 양자컴퓨터의 미래, 메타휴먼, 당신이 우주다, vogue france cyrielle gulacsy 인터뷰 내용 에서 참고하고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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