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i Jul 25. 2024

박하리의 핵심 가치

현대미술작가 박하리

모든 건 무언가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이야기가 너무나 길 수도 있지만 일단 적어본다. 이 전시, 혹은 공연이 '박하리의 무언가'로 남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박하리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무용수나 플루티스트, 조향사의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고, 나아가 관객의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고, 세상의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타적인 사람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다.

20살 초반부터 일찍 작가생활을 하면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온전히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는데, 되돌아서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한 적이

수도 없이 많긴 했다. 이타적이지 않은 나로써는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신기한 생각으로 이번년도에 정말 많은 답답함이 있었다. 언제나 해왔던 전시를 소모적으로 하고 싶지 않았고 나 자신을 위해서 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원하는 나의 꿈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나의 꿈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사실 나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작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림을 사랑하는 지 스스로가 모를 정도로 너무 사랑해서 끼고 살긴 했으나,

경제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무언가가 그려지지 않는 작가라는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직업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세상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세상이 원하는 나의 꿈에 대해서, 내가 어떠한 형태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을 때,

모든 문화예술의 전반적인 것들을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니 신기하게도 많은 답답했던 것들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내가 무언갈 의도적으로 행동할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훨씬 행복했고 훨씬 열린 꿈이었고 남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썬 참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실 되게 가슴이 뛴다.


   기여한다는 건 엄청 단순히도 그냥 내가 스스로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포함된다.

   그것과 동시에 누군가의 아픔과 기쁨을 느끼고, 그것들을 표현하거나 혹은 이해해주거나 혹은 내가 미리 걸어 온 길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그것들을 전시하거나 혹은 그런 것들을 기부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혹은 다른 예술가들과 협업을 하여 그들의 잠재능력을 북돋아주는 것 또한 포함된다. 혹은 해외에 가서 나 자신을 알려서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하여 조금 더 알릴 수 있는 기회.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기반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그게 진심이었다.

   진심이라는 것은 생각과는 별개로 움직인다.

   내가 처음으로 무용 공연을 봤을 때, 그 알 수 없는 내적 에너지에 흥분되어 그것들을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보다 느낌이 훨씬 빨랐다. 언어로 옮기려는 작업이 무의미 했으며, 언어 이전에 무언가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게 제일 신기했다.

   나는 그것이 진심이라고 느껴진다. 진심은 판단이 아니다.

   판단은 무언가에 대하여 사고하는 것이지 진심은 아니다. 판단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무의식적인 시스템 속에서 의도하지 않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대로 조종당하는 것과도 유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판단에는 사랑이 없다.


   나는 판단 말고 사랑으로 살고 싶었다. 그것이 진심이다.

   스스로의 진심을 알려면 무언가를 감각해야 한다.

   누군가의 평가나 누군가의 틀에 맞추어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 보다

   그냥 스스로 느꼈을 때 스스로의 감흥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게 주관이자 그게 자기 자신이 스스로 몸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몸으로 사고하는 건 뇌로 사고하는 것 보다 더욱 세상을 포괄적으로 느낄 수 있다.

   몸 전체로 사고하는 건 오감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직감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그것은 무언가에 대한 옳고 그름이 아니라,

   무언가가 나 자신에게 맞다는 걸 알 수 있는 '있음, 그리고 앎'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어느정도의 고통 뒤에 뿌리내려 있는

   스스로의 그 진심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진심이라는 건 결코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며,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무엇이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진심을 가려서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결코 없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기저에는 외부적인 힘이 작용하여 우리를 조종하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그것은 허상이자 망상이다. 그 힘을 무시하고 떨쳐보내고 스스로의 삶을 살 때 진심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Le rayon ver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