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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Jul 26. 2024

김하은, 살아있음

나는 지금 부산을 향해 가는 ktx에 몸을 싣고, 햇살이 예쁘게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다.


   여행을 가는 길,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보면 '자기만의 방' 이 생각난다.


    스물일곱 갑작스레 제주도로 떠나던 비행기 안에서 혼자 할 게 없었던 나는 들고 간 책을 읽었는데


    그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었다.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너무 너무 예쁜 문체에 금새 푹 빠져들었다.


    그날 머릿속에 떠오르던 장면들과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


   그녀가 묘사하는 그 장소들과 장면들은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내게는 완벽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마치 그 공간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것처럼 문장들을 곱씹고 상상하며 읽었다. 이쯤 되니 한 번 더 읽어보며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여행을 가면 꼭 그 순간이 떠오른다.


    사람이 기억에 남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되는 조건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것 같다


    엄청나게 특별하다거나, 드라마틱한 일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것에서 예기치 않은  행운을 만나게 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요즘 가장 많이 느끼는 일상의 행복한 순간은 이렇게 자연을 마주하며 감각해보는 순간들인데,


   구체적으로는 저녁밥을 사들고 다시 매장에 돌아가는 길, 탁 트인 시야와 그 앞에 가득 찬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아주 따뜻한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햇살을 마주할 때이다. 햇살이 내 몸에 닿아옴을 느끼며 나는 눈에 가득 들어오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평범한 일상의 하늘일지라도 나에게는 압도될 만큼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숨을 가득 들이쉰다.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아무리 우울하고 불안했던 하루였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는 것이다. 죽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이것을 볼 수 없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  


   잠시나마 감사함과 행복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유, 자유를 느낀다. 내가 내 의지로 내가 원하는 장소에, 내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아무도 나의 이 평온하고 소중한 순간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 감사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삶이다.  


   이렇게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자연이 주는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데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절정 경험‘도 도파민이 마구 폭발하는 약물이나 술 같은 자극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자연의 광활함과 위대함 앞에서 이러한 경험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의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에 도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절정 경험‘이라는 것과 내 경험이 얼마나 닮아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루나 현자들이나 학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모두가 바라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타인의 인정, 명예를 나도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나 스스로를 아프게, 병들게 할 때쯤, 깨닫는다.


   내가 왜 이걸 이토록 간절히 바랐을까? 왜 이런 결핍을 느꼈을까?  


   다시 멈춰서 들여다보면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하던 걱정과 불안이 사실은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빠져나올 수 있다.


   직장을 잃거나, 곤경에 처하거나, 누군가를 잃는 아픔을 겪게 되어도  


   나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능력을 갖고 싶다.


   그게 없다면 나는 계속해서 죽음을 바라고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잃게 될 것이다.



  함부로 내 행복의 형태를 타인이 이야기하는 행복의 틀에 끼워 넣지 말아야지

   나는 예기치 못한 일상의 작은 행복과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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