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i Jul 28. 2024

조향, 김하은

후각은 비가시적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감각보다 더 추상적이며, 공유되는 부분이 적다.


   사람은 같은 것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것을 본 것처럼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조향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 차이가 얼마나 큰가에 대해 더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간략하게 우리가 냄새를 맡는 후각 메커니즘을 설명하자면, 우리는 분자의 형태(모양!)를 우리의 수용체로 감각한다. (수용체와 향 분자의 모양이 일치하는 만큼 결합한다.)그래서 뇌의 감각과 해석을 통해 냄새를 맡게 되는 현상이다.  


   사람은 가지고 있는 각자의 후각 수용체가 다르기 때문에(웃기게도 양쪽 콧구멍 또한 다른 냄새를 맡는다.)


   나는 a라는 향을 맡아도 누구는 b라고 느낀다거나, 혹은 아예 느끼지 못한다거나 유사하게는 느껴도 a'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차이는 조금 당황스러울 만큼 어렵다.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a=b라는 특징을 갖는다.'라고 외워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흔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향은 감정과 기억에 굉장히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후각 정보를 처리하는 대뇌변연계는 감정과 기억을 처리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향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익숙함 혹은 낯섦을 느끼고, 익숙함 속에서는 감정과 기억을 함께 떠올린다. 우리의 주관적 정보가 함께 담겨있으니 같은 향을 맡고서도 누군가는 '너무 좋아요! 예쁜 향이에요!'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담뱃잎 냄새가 나요!'라고 표현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향에는 정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맡는 게 곧 정답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향 표현을 더 많이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복숭아 향에서 아주 농도가 짙고 묵직한 나무 향이 난다거나 고양이의 오줌 냄새가 난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향이 따뜻한 느낌을 갖는지, 울렁거리는지, 좋은지, 강한지, 약한지 등 감각하는 향취와 느낌은 저마다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향을 표현하는 언어의 수가 적다거나 향에 대한 지식의 차이가 있다거나 하는 이유들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우리는 같은 향을 맡고도 다른 현실을 본다.  


    다른 세상을 사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면서도 아주아주 가치있는 일이다.

   타인의 세상을 아는 방법은, 그 사람이 표현하는 언어와 비언어적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현실을 어림 짐작해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향한 완벽한 이해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자, 존재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이해란 그저 나의 세계 속 존재하는, 닮은 한 부분을 찾아 그것을 보며 상상해 보는 것이다.


   나의 조각으로 상대를 이해해 보는 것.


    나는 이런 당연한 몰이해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주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이해하지 못함에 속상함과 미안함을 느끼며, 나의 마음에 손을 뻗어 조금이라도 닿으려 노력해 주는 그 모습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하던지.


   내가 느낀 그 노력은 사랑이었다.


    자신의 존재답게 그만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다가도, 타인으로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다시금 나의 방식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려 노력했다.


   서로가 타인임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그 마음만으로 나는 이해받는 존재가 되었고 받아들여짐의 벅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존재가 뚜렷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진실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발견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며, 겸손하게 타인의 노력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진정한 사랑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낀다 해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해 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유와 하루, 박하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