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흡수인간 Oct 31. 2018

처세말고 일을 합시다

# 처세에 약한 저는 너무 힘들답니다

얼마전 육아관련 전문가의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점점 궁금한것도 많아지고, 자기 주장도 강해지는 아들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한가지가 가끔씩 ‘폭발’하는 아들의 행동이었습니다. 평상 시 그토록 유순한 아들이 가끔 소리를 지르고, 당황스러울 만큼 화를 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문가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조용 조용히 표출하면 부모님께서 들어주시길 않는다는 걸 아이가 알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평상 시에 아이가 뭘 원하는 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귀 기울여 주셔야 해요.”


선생님의 말을 곱씹다 보니 ‘조용 조용히 얘기하면 안 들어준다’ 라는 말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듣고 있는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들 어른 세계에서 말입니다. 가게에 물건을 환불 또는 교환하러 가거나, 고장난 전자제품 A/S 신청을 할 때 등등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혹시 이런 말 하는 사람 보신 적 있지 않으신가요? ‘찾아가서 생 난리를 쳐줘야지 요구사항을 들어 줄거야’ 라는 말 말입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말과 행동들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손실회피성향’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케팅에서 이런 심리를 활용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는데, 홈쇼핑 호스트들이 ‘마감 임박입니다’ 말한다던가 마트 점원들이 ‘오늘 오후 5시까지만 세일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손해볼 것 같은 불안감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소리 지르는 아들, 어려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난리를 치는 어들들의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을 것입니다. 듣는 이의 손실회피성향을 이용하는 것 말입니다. 내가 지금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더 큰 소란(문제)을 일으켜서 곤란에 빠뜨릴거라는 신호를 줌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간혹 일을 하다보면 회의 시간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위협을 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하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는 상사들도 많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문득 이런 사람들도 결국 부모에게 소리를 지르는 아들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나는 너를 더 큰 곤란에 빠뜨릴 거야. 나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라고 말하는 그들의 행동이 말입니다.


이보다는 좀 더 점잖은 방식이지만, 직장에서 남의 일에 대한 비평, 비난,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물론,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대안도 없이 그저 그런 식으로 의견을 표출할 때 문제가 됩니다. 그들을 볼때 마다 이런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라고 말입니다. 일이 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심히 의심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안 없는 비평, 비난, 불만을 일삼는 사람들이나 과격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너희들이 보지 못한 것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길 거야’ 라는 메시지를 주면서 그들은 존재감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회사에 나왔으면 일을 해”


위의 말은 드라마 ‘미생’ 의 오차장(배우 이성민)의 대사입니다. 맘에 안드는 행동을 보인 아랫 사람을 따로불러 깼던 과장한테 그가 했던 말이죠. 우리가 회사에 나와서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것은 오로지 '일'입니다. 일이란 다름 아닌 문제해결입니다. 그런데, 문제 해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는 일에만 관심을 둔다던가 (그래야 내 자리가 보전된다면서 말이죠), 적당한 절차와 논리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 과격한 행동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존재감을 인정받고, 조용히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조용히 묻히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의사결정이 돌아갈 때를 보게 됩니다. 그럴 때면 정말 회사가 일을 하러 오는 곳이 맞나 하는 생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처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조직문화는 정말 불가능한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할 맛이 떨어집니다. 이럴 땐 정말 어떻게 해야 될까요? 



조직문화 전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팀 단위 작은 조직의 리더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봅니다. 팀장이든, 아니면 후배를 둔 선배이든 좋은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말입니다. 적어도 그 사람이 일을 하려는 사람인지, 그저 자신의 존재감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올바를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사에 나왔으면 사람들이 일에 집중하도록, 존재감을 과시하거나, 일 말고 다른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행위를 못하도록 기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회사에 나왔으면 일을 하자’ 란 생각으로, 오로지 일만 바라보고 ‘같이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누가 뭐라하든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