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것이 내게 도움 되는 조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좋은 피드백을 골라내는 법, 좋은 피드백을 주기 위한 단순한 원칙

by 흡수인간

어떤 피드백이 좋은 것일까? 과연, 타인의 피드백은 과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만 할까? 이와 관련해 명쾌한 답을 알려준 어느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한 중년 여성이 지인의 집에 김장을 도와주러 갔다고 한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중년 여성은 김장하고 남은 배추 이파리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집에 가서 국이라도 끓여 먹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루종일 김장을 같이 한 그녀의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그런 걸 주워 담고 있어요? 집에 가서 강아지한테라도 주려고?"


중년 여성은 이 말에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러면서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큰 상처를 주는구나. 앞으로 말을 함에 있어 신중해야겠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이보다 더 큰 교훈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상황,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 지인은 그녀의 의도도 잘 몰랐고, 처해진 상황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사실이 그랬다. 그 순간 '강아지에게 주려 그러느냐?'는 지인의 말은 별 고민 없이 내뱉은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모든 말들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를 너무나 많이 겪는다. 더군다나 '평가'적 소통에 능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매일, 매 순간 피드백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언어적 표현이든, 비언어적 표현이든 간에 말이다. 그럴 때 그 모든 피드백에 마음을 쓰고, 스스로를 재단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위 이야기로부터 깨닫게 되었다.


또한, 위 일화의 지인과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저지르기 쉬운 실수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얼마 전, 나의 지인 2명과의 저녁 식사에서 그 자리에 없는 A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그의 부족한 부분, 아쉬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사실 그 이야기를 주고받은 2명은 나에 비해 A의 근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나도 딱히 A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A에 대한 험담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그런데, 문득 그 대화가 너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만난 자리에 왜 A의 뒷담화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그 뒷담화에 염증을 느꼈고 결국 그 둘 앞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A의 인생이 어떻게 되던지 간에 별 상관도 없으면서 우리가 이 중요한 시간에 그의 얘기를 왜 하고 있는 거죠?"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으면서 우리는 더 이상 A의 '뒷담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좋은 피드백을 고르는 법, 좋은 피드백을 하는 법


위 두 가지 일화를 통해 나 또한 몇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첫째, 내 주변의 그 수많은 피드백, 그리고 그들이 들이대는 잣대를 통해 나를 끼워 맞추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굳이 그들의 말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그의 말에 상처받아 밤을 지새우며 고민한다는 게 너무 부질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둘째, 피드백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발전을 진지하게 기원할 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입에 발린 말, 그를 위하는 척하는 맘에서 비롯된 말, 별 고민 없이 내뱉는 피드백은 티가 나게 되어있다. 결국, 누군가에게 나의 피드백이 잘 전달되느냐를 좌우하는 것은 말을 잘하느냐, 조리 있게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발전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관건이다.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말인지, 스스로에게 자신 있다면 다소 거칠더라도 분명 상대방은 소중하게 그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피드백에 얽매일 필욘 없지만,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자. 나를 아는 사람들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대부분이다. 나를 대충 보고 느끼는 모습이 그러하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볼 확률이 높다. 그다음은 선택의 문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고 하거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챕터를 시도해 보고 싶다면 스타일을 조금 바꿔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by hupsu.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토록 어려운 '정직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