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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Sep 24. 2016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마콩고로’

한 술만 떠도 ‘심쿵’ 탄자니아의 도가니탕

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친 ‘퍼스트 레프티(first left)’. 사거리를 지나면 나오는 왼쪽 첫 번째 음식점이라 이런 정직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파리만 날리던 작은 가게를 2배로 늘렸길래 아니 무슨 배짱인가 했는데, 재오픈 후 갑자기 북적북적한 아루샤 ‘핫플레이스’가 됐다. 듣기로는 유명 주방장을 데려와서 음식 맛이 좋아졌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서둘러 5시에 갔는데도 실내는 꽉 차고 야외 두 자리만 남았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저녁시간은 9시인데 이게 웬일이람. 퍼스트 레프티는 탄자니아식 '오픈 키친' 스타일로 새단장을 했다. 한편엔 닭과 염소를 굽고 있고, 전에 못 보던 커다란 냄비에는 하얀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있었다. 냄비 안에 펄펄 끓이고 있는 것은 탄자니아의 도가니탕인 ‘마콩고로(Makongoro)’. 꽃샘추위가 심한 요즘 몸보신 하기 딱 좋은 메뉴다.


한국에선 무엇을 넣고 끓이냐에 따라 꼬리곰탕, 사골국, 우족탕, 도가니탕 등등으로 나누지만 탄자니아에서는 딱히 구별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사골을 넣고 끓인 맑은 소고기 국물은 '수푸(supu,수프를 탄자니아식으로 읽은 것)'라고 하고 대부분의 음식점엔 다 있다. '마콩고로'는 사골과 도가니가 기본 베이스이지만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랜덤’으로 들어갈 때가 많다. 어느 날은 꼬리도 들어가 있고 어느 날은 우족만 있기도 하다. 



'마콩고로'를 시키면 도가니 한 접시와 국물 한 그릇을 따로 준다. 한국의 도가니가 약간 쫄깃하면서 입안에 달라붙는 느낌이라면, 탄자니아의 도가니는 부드러운 돼지껍질 같이 쫄깃하면서 씹으면 똑똑 잘라지는 식감이다. 한국에서 도가니 한 접시에 적어도 만원은 넘었던 것 같은데.. 탄자니아에서는 1500실링, 약 700원 정도다.


같이 주는 국물은 마치 카레가루를 푼 것처럼 진한 노란색이다. 그냥 먹으면 느끼할 수 있으니 현지 고추 ‘삐리삐리’를 두 개쯤 동동 띄운다. 삐리삐리의 혀를 콕콕 찌르는 매운맛은 맑은 동태탕에 동동 띄운 청양고추처럼 개운함을 더해주고, 금방 사라지는 칼칼한 맛이 아쉬워 수저를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매운맛이 땡길 때는 삐리삐리 서너 개를 넣고 국물이 뜨거울 때 휘휘 젓는다. 매운맛이 잘 우러나와 육개장이나 해장국 같이 매운 국물을 먹고 난 것처럼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한국에도 마콩고로가 있어. 탄자니아에서도 파는지 몰랐어.” 같이 온 마사이족 운전수 다니에게 말했다. 다니가 국물을 호로록 마시며 자주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마사이는 생고기만 먹는 줄 알았는데 의외다. 


“우리 회사에선 이거 다니랑 나 밖에 안 먹을걸?” 차가족인 운전수 스티븐이 도가니를 한점 먹더니 한마디 보탠다. 탄자니아에서 도가니를 먹는 부족은 마사이족과 차가족, 딱 두 개 부족뿐이라고 한다. 마사이족에겐 소가 전재산이라서 한 마리를 잡으면 다른 부족은 안 먹는 부위까지 알뜰살뜰하게 먹고, 차가족은 킬리만자로에 살던 부족이라 산속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열량이 높은 사골국과 영양이 많은 도가니를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도가니를 먹는 건 우리 테이블뿐, 심하게 저렴한 '마콩고로' 가격이 이제 이해가 된다.


많이 다르면 공통점이 없어 낯설고 아주 똑같으면 다른 게 없어 재미가 없다. 많이 같고 조금 다르면 대화는 금방 풍성해진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음식 '마콩고로'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퍼스트 레프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메루(Meru) 산에 석양이 드리운다. 그나저나 탄자니아의 나머지 118개의 부족은 이 맛을 모른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커버 이미지 : 아프리카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메루산이 한눈에 보인다. @2016

작은 사진 1-1 : 이 정도 크기의 음식점은 아루샤에서 큰 축에 속한다. @2016

작은 사진 1-2 : 펄펄 끓고 있는 '마콩고로' @2016

작은 사진 2-1 : 라임과 소금, 그리고 현지 고추 '삐리삐리'와 같이 내온 탄자니아 도가니 '마콩고로' @2016

작은 사진 2-2 : 카레처럼 노란 마콩고로 국물 @2016

작은 사진 2-3 : 현지 고추 '삐리삐리'를 띄우면 더 맛있다. @2016

큰 사진 1 : '오픈 키친' 스타일로 새단장을 한 '퍼스트 레프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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