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잠만 자네? 백수의 왕이 아니라 그냥 백수 같아..” 사파리에서 사람들은 처음엔 사자를 코앞에서 본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그다음에는 계속 누워만 있어서 실망한다.
사자 무리를 발견한 화요일 아침 8시. 사자들이 헉헉대고만 있다. 왜 저렇게 헉헉대지? 어디 아픈 걸까? 카메라 줌을 당겨 살펴봤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연신 앞발을 혀로 핥고 헉헉, 또 다른 사자의 얼굴을 핥아주다가 헉헉. 이제 보니 동글동글한 배가 숨 쉴 때마다 크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입 주변과 앞발에 덜 지워진 핏자국이 보이고 저쪽에 누우 뼈가 널려있다. 아, 배불러서 헉헉 댔구나.
11시쯤 드디어 사자가 일어났다. 느릿느릿 터벅터벅. 근처 웅덩이에서 커다란 고양이처럼 물을 마신다. 배는 더 빵빵해졌다. 해는 점점 올라가 정수리를 달구는데 사자의 고개는 점점 내려간다. 세 시간째 움직이는 건 사자의 꼬리뿐. 몰려드는 파리를 쫓아내느라 바쁘다. 가끔 등이 배기는지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뭐라도 찍어야 할 텐데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었다. 덤불 근처를 두어 번 서성이던 사자들은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몸을 포개 잘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한 게 물 마신 거밖에 없으면서 또 자려고 하다니. 오늘 하나도 못 찍었는데…
이틀을 헤매고 저녁 무렵 사자 무리를 찾았다. 사자들은 약간 예민해 보였다. 바람이 살짝 세게 불었을 뿐인데 몸을 반쯤 일으키고, 카메라 위치를 바꾸느라 소리를 좀 냈더니 바로 쨰려본다. 평소엔 반응도 안 하던 애들이 뭔 일인가 싶었는데, 저 멀리 콩알만 해 보였던 누우 떼가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리까지 왔다. 사냥을 하려나? 그래서 냄새 맡고 그랬나?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누우 떼들은 점점 다가오고 사자들은 잠시 엎드리거나 누워있다가도 고개를 돌리고, 이방향 저 방향으로 귀를 쫑긋 거린다. 덤불 바로 뒤까지 온 누우 떼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린다. 계속 스탠바이 하던 카메라 배터리 걱정을 하면서, 언제 뛰쳐나가려나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긴장상태다. 죽은 듯 기다리며 있다 보니 이게 웬일… 누우 떼의 긴 행렬 중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덤불 옆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나가버렸다. 좋은 기회인데 왜 사냥을 안 했지? 배터리만 날리고 아무것도 못 찍었다. 아… 사자가 밉다.
찾기도 힘든데 움직이지도 않는 사자. 그 사연을 이해하게 된 것은 한 사자 무리를 한 달 넘게 쫓아다닌 후였다. 사자가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열 번에 세 번 정도다. 50%도 안 되는 가능성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얼룩말이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해서, 기린이 바로 뒤에 지나간다고 해서 무턱대고 뛸 수 없다. 오히려 어설픈 사냥에 상처를 입거나 배만 꺼지고, 또 사냥에 나서야 할 시기가 앞당겨진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입장에서는 사자가 갈기를 마구 휘날리며 포효하고 암사자들이 떼로 달려들어 기린을 물어뜯고 버펄로를 잡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야생의 초원에서 사냥은 기회조차 쉽게 오지 않는 걸 알고 나니, 아직 먹은 게 남아있어 볼록한 사자 배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으휴, 어제 고생했구나. 오늘은 쉬어… 그치만 모레쯤엔 한번 뛰어 줘.'
커버이미지 : 세렝게티 트라이앵글존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