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잇 Jul 11. 2020

여덟

유물

삼켜둔 과거의 말들이 지금의 나와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하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야.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내일의 나와 다르기 때문이겠지. 긴 밤 속에서도 막막한 어제와 다르고, 밤이 한 없이 짧게만 느껴질 내일과도 다를 거다. 오늘의 밤은 오늘 밖에 없으니 그것을 또 나는 곱씹으며 깨달아야만 한다.

긴 나무들과 열차와 달이 존재하는 그런 밤이면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딘지도 아득해지곤 한다. 문 틈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일 밤을 조잘거리고, 떠들며 내일을 보장하는 지 너무 궁금해. 아니, 사실은 궁금하지 않다. 왜냐면 나의 밤은 더없이 고요하고, 가끔 허물어지는 감정들에 목 놓아 우느라 바쁘기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아침이 되면 나는 파도 속에서 눈을 뜨곤 해. 그냥 그렇게 파란 것들 사이에서 숨 쉬는 것 같다. 그 것들이 있어야만 숨을 쉬는 것 같기도. 가끔 머무는 회색빛 생각들은 그 틈에서야 희석되곤 하니까. 그래, 그런 것 같다.


확언하는 버릇이 줄어들었다. 이젠 내가 아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는 것을 말할 줄은 알아야하는데 그 조차도 입을 떼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오롯이 확언하는 것은 나의 감정. 아니, 나의 감정도 확언할 수 있나? 너는 너의 말을 모조리 이해하고 있니? 먼 예전의 기억을 지금의 언어로 진단한 적이 없을까? 지금에서야 발굴할 수 있는 인생의 시간은 누구한테나 존재하지 않니. 어쩌면 그때는 의미 없던 것이, 지금에서야 의미가 있어지는 거지. 그게 참 재미있다. 천 년이 지나서야 의미가 생기는 것들이 있다는 게. 


짧은 역사 속에서도 그 뜻을 찾아 올라가면 아무 것도 아닌 시발점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 요즘은 갓난아이가 세상을 목격하듯 온갖 것들이 생경하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낯설어진 요즘, 왜 이렇게 나는 숨이 가쁜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많은 담을 쌓아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어. 세상에 늘 관심이 많았던 예전과는 또 달라. 이제는 그것들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아 많은 것을 놓아버렸더니 매번 목격하는 세상은 4층 창문으로 목격하는 세상과는 또 다르다. 창문에는 풍경만 있는데, 세상은 사람이 너무 많아. 


사실 그래서 더 어려워. 한껏 예민해져 세상의 종말이 자주오던 예전과는 달라. 와르르 무너지던 우주를 갖고 있던 날과 또 달라. 자주 폭풍우가 쏟아지던 그 계절과는 또 달라. 나는 이제 세상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그저 조금씩 깎여갈 뿐이야. 무너진 것은 다시 지을 수 있다지만, 깎여 풍화되는 것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덜컥 겁이 나기도 해. 많은 언어를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한 톨씩 사라지는 땅 덩어리가 그냥 그렇게 어느 날 모두 먼지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그럼 나는 무엇이 되어있을까. 그렇게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그 먼지들이 또 다른 머물 곳을 만들어냈을까?














*사진을 비롯한 모든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