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 Mar 28. 2022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불행을 내면화한 여성과 시스템을 이용하는 남성

폴과 로제의 관계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시와 테레자를 떠올리게 한다.

로제는 자신이 원할 때만 폴을 찾아온다. 폴은 로제 자신과 함께 밤을 보내기를 바라지만 결코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로제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내다가 혼자 있고 싶어지면 상냥한 말만을 남기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테레자는 토마시가 매일 다른 여성과 섹스를 하는  알면서도 토마시를 떠나지 않고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 토마시는 여러 여자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테레자임을  알고 있고  테레자가 있는 집으로 귀가한다.

폴과 테레자는 매번 이기적으로 돌아오는 그들을 받아준다. 너무나 가벼운 로제와 토마시, 괴로움과 외로움에 익숙해진 폴과 테레자. 폴과 테레자는 누덕누덕 기워지고 빛바랜 관계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어리고 잘생기며 돈도 많은 시몽이 폴에게 열렬히 사랑을 뿌려대는 모습을 보면 독자로써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영앤리치핸썸 보이가 언니 좋아 죽겠다잖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폴이 시몽을 선택했다고 한들 그의 삶이 바뀌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로맨스에 의존하는 여성, 불행을 관성처럼 이어가는 여성.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보아 왔고, 물론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개인의 문제일까? 나는 몇 세기에 걸쳐 반복되는 이 불행한 로맨스 서사를 보며 구조적 문제를 생각한다.


권력을 쥔 남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이 혼자서는 살기 어려운 시스템을 구축한 후에 손쉽게 이용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끊임없이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면서 아주 미쳐버리지 않을 정도로 혹은 계속 환상에 빠져있도록 만들어 그 상황을 이용했다. 로제와 토마시가 폴과 테레자에게 했던 것처럼. 남성은 그런 방법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채득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은 자긍심과 자존감보다는 낭만적이고 지독한 로맨스 서사를 내면화한다. 이는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교묘하게 짜인 게임판과도 같다. 여성은 자신이 선척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가진 외모나 능력과는 별개로 남성의 파트너로 격하되고 그것이 마치 아름다운 로맨스인 양 둔갑된 이야기들을 어릴 때부터 접해왔다. 남성이 여성을 구원해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서사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세상은 여성에게 그 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로 꾸려진 세상 속에서 다른 삶을 상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여성의 삶에 무관심하고 자신들의 수치심을 돌아볼 용기가 없는 남성들은 결코 시스템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성의 삶에 얼마나 많은 성적 유린과 억압, 가정폭력과 차별이 있었는지 외면하고 무시해버린다. 그들은 여성이 겪는 유린과 폭력에 다가서기를 두려워하는 듯 하다.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내 곁에서 평생을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남성들도 내 불행을 언뜻 보더니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 내 삶을 수렁에서 구원해줄 것만 같이 보였던 그들은 그걸 감당할 용기도, 힘도 없는, 심지어는 상상력조차 부족한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아마도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라고 뮤리엘 루카이저는 말했다."

- 홍승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19세기 후반 히스테리아 연구는 성적 외상의 실재가 의문에 휘말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 당시에는 폭력이 여성의 성생활과 가정생활에서 일상적인 부분임을 자각하지 못하였다. 프로이트는 진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이를 거부하였다. 20세기에 이루어진 외상 장애에 대한 지식 체계의 발전은 대부분 참전 군인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전쟁을 수행 중인 남성이 아닌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더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1970년대 여성 해방 운동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성에게는 사적인 삶의 포악성에 붙일 만한 이름이 없었다.(...) 여성의 문제를 '이름이 없는 문제 problem without a name'라고 부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시스템을 이용하는 남성과 시스템을 내면화한 여성의 불행한 로맨스가 사강의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그리고 나 또한 불운한 서사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절망적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언니들을 다시 떠올린다. 과거 모든 남성 정신분석가, 의사들이 히스테리아를 외면할 때 성폭력, 가정폭력 생존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이어받은 여성 연구자들이 히스테리아를 트라우마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는 여성주의 운동의 초기 패러다임이 되었고 여성들은 스스로 길을 만들었다.

오늘
나의 작은 몸뚱아리 안에
가만히 앉아 배운다 ⎯
나의 여성의 몸
길 위에서 잃어버린
열두 살의 나이에 내게서 멀어져 버린......
나는 도전하는 여성을 보고
나는 여성을 보는 것에 도전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기에 도전한다.

- J.Tepperman, "Going Through Changes", in Sisterhood Is Powerful, ed. R. Morgan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폴에게 구원처럼 다가오는 시몽도 결국엔 로맨스의 환상에 불과하다. 시몽도 로제도 그 누구도 폴의 삶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폴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나의 동료, 친구, 동생들에게, 그리고 자꾸만 불행으로 걸어 들어가는 스스로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우리 인생에서 소모적인 로맨스는 필요하지 않다. 시스템이 인생을 휘두르도록 놔두지 말았으면 한다. 누군가는 들여다보기 조차 두려워하는 폭력을 우리는 모두 겪어내고 살아남았으니까. 우리는 결코 나약하지 않다. 그러니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될 것이고, 오히려 혼자이기 때문에 충만하게 살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모두에게 던지는 용기의 언어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왈로우(Swallow)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