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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an 28. 2022

스왈로우(Swallow)

우울과 불안에 대한 사려 깊은 묘사와 위로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스왈로우(2019)'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에 잠식당한 인간의 불안한 눈빛, 자학적인 행동, 공허한 표정과 무기력감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생긋 웃어버리는 미소까지.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우울과 불안을 섬세하게 표현해내서 보는 내내 신기했다. 나는 헌터(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어려움 없이 받아들였고, 다른 등장인물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헌터의 행동까지도 다 내 것처럼 와닿아서 이는 나에게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헌터의 울음, 웃음, 눈빛과 행동 모두 영혼이 겹쳐지듯 그냥 알았다. 나는 원체 무감각하고 무감정한 사람이라 대체로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에 잘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


헌터의 ‘이식증’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나 또한 자해를 통해 스스로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험을 지금까지도 멈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헌터는 처음 구슬을 삼킬 때, 어쩌면 경건하고 숭고한 의식을 치르는 듯 보이는데 이는 내가 경험했던 감정과 일치한다.

그날 나는 속이 답답하고 불쾌했다. 헌터와 마찬가지로 감당하기 힘든 관계로 인해 앓고 있었다. 사실 당시의 감정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피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팔뚝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자해를 하니 마음이 착 내려앉고 차분해졌다. 답답했던 속이 손을 땄을 때처럼 해소된 듯 한 기분이었다. 아마 내가 직후에 정신과를 찾지 않았다면 헌터처럼 스스로를 더 파국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터는 적절한 돌봄 노동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가 가진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벗어나기 위해서. 하지만 헌터는 돌봄이 아닌 감시의 대상이 되어 남편과 그의 가족으로부터 24시간 감시를 당해야 했다.

돌봄 노동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는지 헌터의 자해를 통해 우리는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또, 헌터에게 ‘안전하다’라고 말해주는 루아이와의 그 잠깐의 연대가 어떻게 헌터를 살리는지까지도 우리는 보게 된다.


만약 당신 곁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회피? 혹은 비난? 아니면 공감과 연대? 아마 영화를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스왈로우는 마지막 장면까지도 참 좋았다.

일상적으로 스치는 사람들 속에 치열하게 생존해내고 있을 헌터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서 마지막 장면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 영화 속의 헌터는 정말이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강한 여성이다. 나는 한 시간 반 만에 헌터를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2021년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왈로우였다고 말할 것이다.


*주변에 우울증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참고할 만한 적절한 레퍼런스일 것 같다. 물론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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