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틈을 자유롭게 헤엄치기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놀던 어린시절에는 하루라도 빨리 더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시간이 왜이렇게 쏜살같이 흐르는지,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해야하는 시간에,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는 걸까?
생각해보니 지난 한 해 참 엎치락 뒤치락하며 애썼다고 다독여주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열심히 다니던 회사를 갈무리하고, 옆지기의 몸 안에서 무럭무럭 자란 둘째와의 만남, 두 시간마다 깨는 아가를 얼래며 눈 밑에 다크써클이 진하게 내려왔던 시간, 연이은 면접 자리에서 탈락하는 취업 시장을 경험하며 세상이 날 밀어내는 것 같은 상실감으로 젖었던 시간, 여태 해놓은 공부, 시장에서 몸으로 겪어온 경험들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직종으로 밥벌이를 해보겠다고 도전하는 시간들... 이 모든 게 한 해 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한 해를 어떻게 갈무리 해야할까? 당장 떠오르는 건, 지금 내가 온 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이 사건들 - 육아와, 새로운 진로 등-이 하나같이 꽤 오랜시간동안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라는 거다.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성인이 될 것도 아니고,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와 경력을 쌓는 과정도 수 년 동안 지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금의 밥벌이도 병행하며 충실하게 지내야 하고. 그러니, 이제 갓 한 달 남은 시간동안 뭐가 정리가 되고 자시고가 없는 셈이다. 그저 내게 놓여진 길을 하루하루 충실하게 걷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있나?
그래도 하나의 바램을 덧붙여보자면, 그 길을 걷는 시간들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잠시 길가에 멈춰서서 아이들과 눈싸움도 하고, 동네 이웃들과 산책을 하며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머리도 식히고, 옆지기와 함께 분위기 좋은 찻집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여유 정도는 늘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마침 오늘 점심에 마을에 사는 이웃과 함께 점심을 먹는 약속이 잡혀있다.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은데, 그래도 옆지기와, 둘째와 함께하는 오붓한 시간이니, 크게 마음졸이지 말고, 그 시간을 잘 즐기자고 다독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과업에 매몰되어 사는 인생 속에도,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소소한 틈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틈 사이를 잘 헤엄치는 것이 내가 사는 삶을 한 층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가 될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