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 꼭 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일상의 여유가 그립다

by 고종구


"올 겨울에 꼭 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오늘의 주제에 대해 틈틈히 생각해봤는데, 쉽게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혼자 끙끙 머리를 쥐어짜다가, 옆지기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가볍게 물었다. '자기는 올 겨울에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애들 두고 혼자 친정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밥먹고 싶어요' ... 아... 그렇구나. 가볍게 물어놓고,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고개가 숙여지고야 마는, 민망한 그림이 펼쳐지고 말았다.


그의 지친 기색을 살피며, 문득 내게 일상의 여유가 많이 부족함을 알아차렸다. 사실, 우리는 육아라는 공통분모 안에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빨래를 개다가 말고, 청소를 하다가 말고. 그렇게 두고 간 자리를 그는 한숨을 쉬며 지켜보았을테다. 한때는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경제활동을 해왔던 그가 벌써 수 년째 아이들 뒷꽁무니만 쫒아다니는 지금 상황을 답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밥벌이가 무슨 벼슬이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주었을텐데, 그마저도 말을 아껴왔을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린시절을 떠올려보면, 부모의 자리는 대개 비어있었다. 아버지야 그렇다 쳐도, 어머니마저 생계를 위해 두 돌 된 나를 집에 두고 일을 나가야 했다고 했다. 그 덕에 나는 어린시절부터 어른들 없이 형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일이 익숙해졌다. 어미의 품이 너무나 그리울 땐 옷걸이에 걸려있는 어머니의 옷에 코를 박고 오랫동안 냄새를 맡곤 했다. 어쩌면 젊은날의 처절한 방황은 어린시절에 다 받지 못한 사랑의 흔적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라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정말 바쁜 건 맞다. 하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가면서 눈 앞의 일들을 해결하다보면,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게 살림과 육아라는 게 서글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가들의 시절을 두 눈에 담을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야 하는 시간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옆지기의 속이 가장 많이 타지 않았을까.


사실 나도 이렇게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까지 살게 되었을까. 올 겨울이 지나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뜨끈한 방구석에 앉아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라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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