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지냈던 시절
매해 가을이면 길거리에 가득 쌓인 노란 은행잎들. 어제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도, 오늘 같은 길을 걸을때 감쪽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있음을 확인하며, 보이지 않는 노동의 수고를 먼저 떠올리는 나는 어쩌면 노동자의 DNA를 품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곤 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하루 아침에 번쩍!하고 생겨난 게 아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서울에서야 누군가가 쓸어주는 거지, 청년 시절에 지냈던 시골에서는 누구도 대신 길바닥의 낙엽들을 쓸어주지 않았다. 나의 이십대 기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도원 -정말 적절한 다른 이름이 있다면 알려주시라. 이젠 나도 바꾸고 싶다- 에서는 모든 일들을 나의 손으로 해결해야 했다. 매해 여름이 되면 장마를 대비해 괭이와 삽을 어깨에 매고 수로를 뚫으러 다녔고, 가을이면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고, 겨울이면 눈을 쓸러 다녔다. 그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아... 하늘에서 쓰레기가 떨어지네"라며 한숨부터 나왔을까.
기도원도 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야 운영(?)이 되니, 날이 좋은 가을이 대목(??)이었다. 수십개의 객실을 청소하고, 장을 보고 부식들을 정리하다가 행사 당일이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나가서 길의 낙엽들을 쓸어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몇 시간동안 쓸고 나서야 길이 정리가 되었고, 그제서야 주방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곳에 오는 이들은 날 무척 예뻐해주셨다. 새파랗게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 낯선 시골에서 지내는 이유를 늘 궁금해했다. 늦은 밤, 밤하늘에 가득 수놓은 별아래 장작이 타는 소리를 벗삼아 내 삶을 궁금해하는 이들과, 그들의 삶을 궁금해하는 내가 둘러앉아 두런두런 삶을 나누던 기억들이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있기도 하다. 별다른 밥벌이가 없던 내게, 삶터로 돌아가는 그들 중 몇몇이 조용히 찾아와 내 손에 용돈을 쥐어주는 온정이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 켠이 시큰거린다. 그 때가 마냥 힘든 것도 아니었고, 마냥 보람만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많은 노동을 감당하면서도,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책을 읽었고, 기도를 했다.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히 기도원에서 쓰던 별칭을 불러주었다. 나도 그 시절 고락을 겪은 인연들과는 연배와 상관없이 - 당시 우리는 오로지 서로의 별칭으로만 서로를 대했다 - 친한 벗으로 기억한다.
지난 여름, 그 곳을 기억을 공유하는 이가 파주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이제 환갑을 앞둔 그가 왜이리 반가웠던지, 치킨과 맥주를 앞에두고 친한 벗에게나 나눌만한 이야기들도 서슴없이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의 물결 한복판에서 뒤채이며 살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추억 같은 거를 고집스럽게 붙들고 싶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