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비워두었던 나의 자리
요근래 내가 찾아듣는 음악은 따로 없다. 이른 새벽, 홀로 무언가를 쓰거나 집중할 때 유튜브에 '카페음악'이라 검색하고 시간도 넉넉하고 그나마 광고가 없어보이는 걸 클릭해 듣긴 하지만, 그저 아무것도 없는 빈공간에 아무거나 채우는 수준인 그런 행위에 감히 애정어린 이름을 붙이기엔 뭔가 겸언쩍다.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과목 특성상 수식이 많고, 계산을 해야하는 순간들이 많은데, 손을 따라 놀릴 수 없으니 입으로 웅얼거리며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뭐 바쁘니까, 달리 시간을 낼 수 없으니까, 나름 절박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 거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부끄럽고 민망하다. 미친놈 소리를 듣고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는 걸까.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 듣는 음악이 있지 않겠냐? 하고 다시 물어본다면, '뉴진스'를 찾아듣긴 했다. 어느 인디밴드가 뉴진스의 음악을 부르는 걸 뮤직비디오로 만들면서 그제야 알게된 뉴진스. 참 흥겹네... 정도로 생각해서, 운전하는 동안 정말 졸릴 때 길바닥에서 죽지 않으려고, 잠깨는 용도로만 찾아들었다. 그나마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는 그조차도 듣지 않는다.
가족들을 포함한 마을 이웃들과 지낼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마을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대중문화에 길들여지는 걸 경계하는터라, 급하게 통화를 해야할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전화기도 꺼내지 않는다. 한몸살이의 존재를 모르는 동네 주민들과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이곳에서, 이웃들과 주민들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지내는 게 눈에 띄기도 한다. 교복을 입은 저 아이들은 귀에 에어팟을 꼽고 뉴진스와 에스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는데, 우리 아이들은 동무들끼리 걸으며 장난을 치던지, 아니면 홀로 그 곁을 지나치든지 한다. 저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까? 혹 자기가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건 아닐까? 매번 궁금했지만, 한번도 묻지는 못했다.
지난 수요일, 마을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중학과정을 지나고 있는 한몸살이 아이들이 저마다 노래를 지어서 마을의 이모삼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푸른하늘과, 따사로운 햇빛과, 동무들과 참을 나눠먹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진 노랫말을 들으며 그동안 마음속에 있던 갈증과 고민들이 풀어지는 경험을 했다. 이들은 세상에 뒤쳐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얼굴에 솜털이 가득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사춘기를 지나 한껏 갈라진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풀어내는 모습이 참 대견해 보였다. 음악회가 끝나고서도 그들이 부른 노랫말들이 마음 한 켠에 여운처럼 오래 남았다.
푸른하늘과, 따사로운 햇빛과, 이웃들과 장난치며 함께 울고 웃는 이야기. 너무 오랫동안 비워두어 이제는 먼지마저 쌓여있던,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이제 새로 곡을 들여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