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든 배우면 된다
어린시절부터 딱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었다. TV를 즐겨보는 편도 아니었고, 나란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화면 너머의 누군가를 나 혼자 마음속에 품고 애정의 싹을 키운다는 게 썩 달갑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철이 들고서부턴 선생을 찾아다녔다. 책을 읽고서 울림이 오랫동안 남아있는 이들은, 책의 앞 뒤에 남아있는 저자의 신상을 더듬어 당돌하게 찾아갔다. 대개 승려, 신부, 목사 등 주로 종교인이었던 그들은 생면부지의 내게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정돈된 글에 다 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나를 대하는 태도를 직접 마주하며, 그들의 삶을 헤아려보았다. 공동체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전국 각처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공동체를 일궈온 이들을 만나는데 힘을 쎴다. 사실, 그렇게 선생을 찾아 헤매었던 삶의 궤적 속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철없는 시절에 대한 참회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배울것이 많았던 선생들조차, 가까이 그리고 오래 지내다보면 허물들 또한 자연스레 보였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할퀴는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고, 소유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책에 남긴 글들을 등지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책을 기록한 당시, 치열한 삶과 정신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들 또한 존경받는 어른이기 전에 사소한 유혹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임을 인정하기까지는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 나도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자리에 섰다. 바로 설교 단상에서.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눈동자들이 묵묵히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감히 예수의 삶에 대해 말했고, 이처럼 살아가보자 부르짖었다. 설교가 끝나고 교우들은 내게 은혜 받았다고, 고맙다는 칭찬의 문장들을 골라 선물처럼 건네주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스스로도 지킬 수 없는 말들을 감히 내뱉었노라고. 나조차도 그렇게 살 자신이 없으면서, 감히 누군가에게 그렇게 살자 독려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죄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추앙을 받는 자리에 반복적으로 서게 되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나조차도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선생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설교의 자리에서 내려오면서부터, 누구도 선생이나 스승으로 삼지 않겠다 다짐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추앙하도록 만드는 세상의 풍조를 지켜보며, 다들 누군가를 인정의 괴물로 만들어는 걸 즐기는 건 아닌지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는 책이나 영상을 통해 비춰지는 누군가를 흠모하는 일들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 배우고 싶은 점이 있으면, 딱 그 부분만 배우면 되었다. 흠모하기를 그만두니 관계가 담백해졌다.
누구도 나보다 위에 두지 않으니, 자연스레 누구도 내 밑에 두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바가 많다. 자기의 좋고 싫음을 비틀지 않고 솔직하게 꺼내는 법, 담백하게 소통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처럼 밝게 지내는 이들을 통해 삶을 배우고 있다.
며칠 전 한몸살이에서 나고 자란 청년을 초대해 함께 밥상을 나눴다. 중학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채식을 했고,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하며, 5년 가까이 한 어른에게 우직하게 풍물을 배워오고 있는 그의 걸음이 참 남다르다 여겼다. 아직 한참 젊은데도 불구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담백함, 더하기보다 덜어내기 위해 애쓰는 삶의 여정을 응원했다. 역설적이게도 이제 갓 네 돌이 되어가는 첫째에게 그는 연예인이었다. 어린이집만 가면 '둥둥 두두둥둥~ 하늘보고 별을 따고 땅을보고 농사짓고 ~어둠속에 불빛이~ 우리들을 비춰주네~!" 풍물을 완창하고야 마는 첫째에겐 이따금씩 열리는 마을잔치에서 꽹과리를 들고 신명나게 판을 뒤흔드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앞으로 그가 일구게 될 한몸살이는 어떤 모습이 될까? 좌충우돌 살아온 내가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