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대로 삶의 고달픔
"예방접종을 한 번도 안맞았다구요?"
별 감흥없이 모니터에 정보를 입력하던 의사는 의자를 돌려 나를 봤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동공이 흔들리는 것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오픈하고 싶지는 않았다구요... 나의 불편한 기색을 느꼈는지, 그는 애써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혹시, 특정한 신념이 있어서 그렇게 하시는지요?"
특정한 신념인가? 그렇지 않았다. 신념이라기보다, 별다른 고민없이 많은 이들이 그렇다라고 해온 것에 질문을 던진 시간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병원에 와야할 이유들은 생겨났고, 세 돌을 갓 넘긴 첫째가 처음으로 병원이라는 곳에서 피검사를 하게 된 것 뿐이었다. 첫째는 체혈실에서 주사가 팔에 꽂히는 순간에도 이게 뭐지? 하는 얼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체혈실 직원이 "마치 주사를 처음 본 것 같은 표정이네요" 하며 하하 웃는데, 그 말도 사실이었기에 차마 맞장구를 치며 웃어줄 수 없었다.
첫째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지점들은 다른 곳에서도 종종 생긴다. 특히 먹거리가 그렇다. 주변 이웃들이 자기 아이에게 젤리나 사탕을 먹이다가 우리를 보고 이거 나눠먹자~ 하고 먹을거리를 내밀면 최대한 가볍게 거절하려고 애쓴다. 그리고는 이런 상황을 마주한 첫째가 "왜 난 저거 못먹어?"라고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준다. 너의 예방접종은 건강한 먹거리라고.
그럼에도 아이들은 종종 아프다. 계절이 바뀌면 아프고, 해가 넘어가면 아프다. 아픔을 통해 면역력이 강해진다고는 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매번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옆지기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먹이더니 겨자찜질과 뜨거운 김쐬기를 더하기 시작했다.
증세가 심해지기 전에 빨리 양방의 도움을 받는게 좋지 않나? 이런 생각도 종종한다. 사실, 올해부터 병원에 조금씩 들락거리기 시작하기도 했다. 양방을 경험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병원에서 받은 처방에서도 반 이상을 더 덜었음에도 금방 증세가 나아지기도 했다. 내가 육아 살림에 품을 들이기 어려운 때에는 빨리 양방의 도움을 받는 쪽으로 선택을 자꾸 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제 힘으로 앓이를 이겨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 고민은 앞으로도 쉬이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일상의 분주한 고민들이 아이들을 자라게 할 것이다. 나도 덩달아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