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끌어가는 감정은
20대 시절, 몸담았던 공동체에서 하던 수련 중 '희노애락'이란 게 있었다. 말그대로 웃고, 화내고, 울고, 즐거워하는 수련이었는데, 정해놓은 시간동안은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라면 규칙이었다. 땡~ 하는 종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다가, 또 땡~ 하는 소리가 하면 그동안 꾹꾹 눌러담아왔던 분노가 쏟아지고, 또 땡~ 하면 또 꺼이꺼이 울다가, 마지막으로 땡~ 하는 소리가 나오면 더이상 몸이 움직이기를 거부할 때까지 즐거워하며 춤을 추며 놀았다. 세상에, 내 속의 감정과 상관없이 한다고? 처음에는 거부감도 들었지만, 막상 현장에 뛰어들어보니 못할 일도 아니었다. 적어도 깔깔거리며 웃는 동안에는 마음속의 근심과 걱정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 웃다보니 거짓말처럼 마음도 즐거워졌다. 다만 너무 오래 웃다보면 배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아프다가, 나중에는 통증이 허리까지 올라와서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다는 게 함정이었다. 종내에는 너무 괴로우니 빨리 다음 종을 울려달라고 간청을 하게 되는 웃지못할 헤프닝이 벌어질 정도다.
가장 힘든 게 웃는 일이었다면, 즐거워하는 일은 힘이 닿는 한 언제까지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엔 몸이 건장했을 때라 몇시간이고 춤을 추며 놀았다. 함께 춤추는 이들의 기운을 느끼며 한껏 고양될 때도 있었지만, 어느 시점이 넘어가면 오롯이 혼자 즐거워하는 지경이 된다. 그저 야웨 앞에서 홀로 즐거워했다던 다윗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정신없이 자아에 대한 인식조차 흐릿해질 정도로 계속 춤을 추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곤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때는 이렇게 즐거워만 하며 남은 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마저 있었다.
그 시간들을 천천히 통과하는 동안, 인생의 곡절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폭풍에도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바위 하나를 내 가슴 깊숙한 곳에 심어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것만 같은 사건을 통해 손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력한 순간들이 찾아와도, 이 감정들 또한 지나갈 것이다. 나를 움직이는 건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자 결정이라는 것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문득 지금으로부터 8년전, 박근혜의 탄핵을 앞두고 광화문 한복판에 자주 가던 시절이 떠올랐다. 교우들과 함께 방석이며 핫팩이며, 촛불이며, 바리바리 챙기고 매주 찾아갔던 광화문, 파도파도 끝이 없는 기가막힌 이야기들 속에서 분노했고, 분노를 풀어낼 길을 찾지 못해 무작정 찾아간 광장에서,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만났다. 당시에 떠돌던 온갖 이야기들을 친숙한 노랫말에 섞어서 부르는데, 아! 유쾌하다! 라는 감정이 솟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울분의 현장 한복판에서도 즐거움의 고리를 찾고 있었구나. 나는 그렇게 광화문이라는 사회의 한복판에서, 깊은 산골짜기에서 배웠던 희노애락 수련을 다시 만났다.
나는 나답게 사는 일에 관심이 있지, 내가 아닌 다른 누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배우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감정의 세계를 만들어갈 주체로서의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즐거워하며 살고 싶다는 바램을 여전히 품고 산다. 때마침 8년전의 추억을 다시 곱씹어볼만한 상황이 지금 우리 사회에 펼쳐지고 있다. 뉴스만 보면 숨이 막이고 화가 치솟고 있는데, 이참에 즐거워할만한 거리를 하나 만들어봐야하지 않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