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살지, 무엇을 하며 살지를 정하면 될 일이었다. 몸은 공동체라는 곳에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최종선택을 하는 자리에는 오로지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내가 있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서관의 책을 열권씩 빌려다가 한쪽에 쌓아두고 뒤적거렸다. 상담을 하러 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의 옷은 늘 한결같았다. 이렇게 나를 밀고 또 밀다보면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혼인을 하고, 옆지기와 함께 한 방에 누우면서 생각했다. 이젠, 내가 밥벌이든 뭐든 함부로 옮겨다니며 살지 못하겠다. 곁에 누워있는 이의 삶을 해치면서까지 내가 밀고 가야할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첫째가 조산원에서 막 태어날 때, 그를 두 손으로 받아안으면서 이 아이가 다 자랄 때 쯤이면 난 환갑이 되어 있겠네, 라는 생각부터 들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둘째를 맞이한 올 겨울, 방구석에 면보로 돌돌 싸여 누워있는 조그마한 생명을 한참 들여다보며, 지금처럼 불확실한 형태의 자영업만 해서는 이들을 돌보며 살 수 없겠다는 절박함이 찾아왔다.
주변에 함께하는 이들이 하나 둘 생길수록 운신의 폭은 나날이 줄었다. 어찌보면 답답하다 여길 수도 있었는데, 사실 나날이 줄어든 자리만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으로 채운 것이니 크게 속상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여전히 내가 헤쳐가야 하는 몫은 남아있다. 안그래도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하는 수고로 고달픔에 젖을 때도 있다. 그래도 매일 밤, 아이들과 살을 부비며 눕다보면 언제 고달픔 같은 것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어젯 밤에 옆지기에게 "내가 만일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라고 물으니 단박에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살고 있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에, 한참을 서로 낄낄거리며 웃고 말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와 곁에 있는 아이들 외에 다른 사람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만큼, 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게 좋다. 다른 무엇을 선택해서 다른 이들과 함께하느니, 돌아가더라도 지금 함께하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이 선택들을 연달아 하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