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을 쳐내는 스냅과 쉿펄의 공통분모
어린 생명과 함께 지내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주하는 경험이 있는데, 바로 그의 거부를 마주하는 일이다. 왕에게 진상을 올리듯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담아 '아~'하고 그의 입 앞에 올려다 놓으면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기가 막히게 쳐내듯, 그의 손(하마터면 앞발이라 쓸 뻔했다)이 번개같이 튀어올라 숟가락을 탁! 하고 쳐낸다. 바닥에 흩어져버린 밥알과 반찬들을 보며 속이 부글거린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숟가락을 놓으면 그는 굶고 마는 걸. 속을 애써 가다듬고 다시 '아~'하고 숟가락을 올린다. 단, 언제든 신속하게 그의 스냅을 피할 궁리를 하면서 말이다.
신대원에 다닐 무렵, 부족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건물 외벽에 돌을 붙이고 다녔다. 책상머리에만 앉아있던 몸이 견딜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런 사정까지 봐줄 형편이 아니었다. 띄엄띄엄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다행히 좋게 봐주는 반장 덕에 한 팀과 꾸준히 함께할 수 있었다. 당시 내 사수는 우즈벡에서 왔다. 그는 나보다도 작은 몸뚱이었음에도 50~60키로가 넘는 돌들을 번쩍번쩍 들고 다녔다. 시작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손가락 마디가 다 까져 힘들어 하던 내게, '굳은 살 박히면 괜찮아!' 라며 밝게 웃어주던 형님의 아우라는 넋놓고 바라볼만한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멋있던 형님도 입만 열면 쉿펄쉿펄부터가 쏟아지곤 했다. 당시엔 왜이리 욕을 자주해서 그나마 남은 평판마저 깎아내릴까 싶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가뜩이나 한국어에 서툰 형님이 그가 겪어온 수많은 현장 속 부조리를 마주하며 머릿 속에 떠올렸을 숱한 항변들, 그 중 그가 뱉어낼 수 있는 언어가 과연 쉿펄 말고 무엇이 있겠나 싶다.
타의로 던져진 세계 안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뱉어내는 언어는 바로 '아니야!'가 만국 공통어가 아닐까 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한다. 나와 함께 지내는 둘째의 거부도, 우즈벡 형님의 쉿펄도, 하다못해 윤석열의 폭압에 그것이 아니야!라 외쳤던 국회 앞의 숱한 응원봉들도 사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니라고 외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가 자기 마음대로 놓아도 되는 장기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임을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언어를 모른다고, 존재가 없는 게 아니다. 다만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모든 존재는 저머다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거부를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둘째의 스냅이 더욱 정교(?)해져서 숟가락 뿐 아니라 우리집 살림을 부수고 다닐 때가 찾아오면 열불이 터질때도 있겠지만 어쩌겠나. 어차피 난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속에 있고, 더불어 산다는 건 나와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또 끌어안고 살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