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자락에 있는 큰 명절(?)인 성탄을 앞두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푸른 나무에 선물과 별들을 걸어놓는 가게들이 즐비해진다. 하지만 내게는 성탄은 고사하고, 산타와 관련된 기억도 전혀 없다. 어린시절,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어떤 종교와도 일상이 엮인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기억 속, 어린시절의 특별한 날은 오직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함께 전을 부치고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노나먹던 설과 추석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커서는 제 발로 교회를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만났다. 봄이 되면 '예수가 부활했네'라는 포장지를 떼어내며 삶은 달걀을 까먹었고, 가을이 되면 단상 앞에 배추며 감이며, 온갖 채소와 과일을 쌓아놓는 풍경을 마주했다. 겨울이면 예수의 탄생을 기린다며 노래며, 춤이며, 다양한 문화행사를 준비했다. 교회 안에서 만들어가는 이런 문화에 어깨를 들썩이며 즐거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남들이 좋다니까 무작정 따라하는 것 같은 어색한 기분을 못내 떨치기가 어렵기도 했다.
옆지기와 함께 지금 사는 동네에 오면서 만난 새로운 풍경을 만났다. 스스로를 그리스도교인이라 부르면서도 어떤 절기와도 연결짓지 않는 이들의 일상이 참 신기했다. 부활, 성령강림, 대림, 성탄, 심지어 말씀과 성찬의 전례마저 치워놓고도, 어떻게 한결같이 올곧고 뜨거운 마음을 품고 사는지 궁금해졌다.
이곳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들이 애를 써서 만들어가는 문화에 조금씩 젖어갔다. 부활절, 성탄절이 떠나간 자리에 시농제, 추수제가 찾아왔다. 따끈한 봄이 되면 이웃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모를 심었고, 가을이 되면 벼를 베고 수수팥떡을 만들어 나누어먹었다. 아이들도 이웃들이 함께 모여 축하하는 자리에는 으례 사물놀이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산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건 특별한 관념이 아니라 문화라 믿고 있다. 그렇기에 문화가 가진 힘은 대단하고, 우리가 뜻에 걸맞는 문화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데에는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산타와 성탄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며 살 생각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우리의 일상에서 맞이하는 사건들과 걸맞는 문화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런 문화를 들이는데 더욱 애를 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