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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종구 Dec 25. 2024

추운 겨울에 떠오르는 기억

청년의 때와 노인의 때, 여전히 혼자인.

  날이 쌀쌀해지는 연말이 되면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두 뺨이 얼어버릴 것만 같은 추위에 애꿎은 발만 동동 구르던 거리가 생각난다. 지금의 내가 마치 숨을 쉬듯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조차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거리에서 배웠던 시간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나? 이제는 그 시절의 기억들이 흐릿해지는 걸 아쉬워하는 걸까. 아니면 안도하는 걸까.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 어쩌면 정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 기억들 사이를 거닐어본다.



  스물 셋의 겨울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올라 온 서울의 길을 한참 거닐다 문득 헤아리기 어려운 깊은 고독을 마주했다. 정처없이 걷던 발걸음을 멈췄다.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파가 가득했지만, 이들 중 누구도 나에게 눈길을 주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나 하나 없어지더라도, 날 기억해주는 이가 과연 있을까? 무엇보다 인파로 가장 북적이는 거리에서, 애석하게도 나는 모든 연결고리로부터 끊어짐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옆지기를 만났고, 두 아이들을 맞이했다. 어느새 넷이서 함께 맞이하는 첫 겨울이 되었다. 아직 말도 못하고 기어다니는 둘째의 여린 살갗을 매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매일같이 약동하는 생명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채이느라 분주한 나의 일상이 새삼 신비롭게 다가온다. 스물 셋,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고독 속에 빠져들어가던 나는 지금의 나를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커질수록, 지금 누리는 행복도 언젠가 흐릿해질 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우리들의 품에서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이들도, 세월이 흐르면 저마다의 세계를 만들어 파랑새처럼 떠나갈 것이다. 마치 그 때가 도적같이 찾아오더라도, 그들 앞에서 서운해하거나 미련품지말고 담담하게 보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미리 단도리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노인이 된 내가 스물셋 겨울처럼 다시 거리의 한복판에 홀로 서게 된다 할지라도, 옆지기와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울고 웃었던 기억을 품고 있는 노인은 어쩌면 같은 자리에서도 다른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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