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을 걱정하지 말라
오래전부터 내 삶을 붙드는 단단한 뿌리를 찾고 싶었다. 한때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친구들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2회차 인생을 사는 도인처럼 세상을 휘적거리며 인생이 무엇이냐 묻고 다녔다. 나라는 존재를 규정짓는 근본. 그것만 찾으면 다 해결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필요한 것이었는데, 삶의 균형에 대해 생각할 정도로 나는 똑똑하거나, 눈치가 빠르지 못했다.
나름 눈에 불을 켜고 열심을 낸 덕에, 삶의 나침반에 대해 제법 정돈된 문장을 꺼낼 수 있게 되었고, 인생길을 함께 걷는 동무도 만났다. 나같은 녀석에게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고마운 마음 품고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밥벌이는 참 어려운 영역이더라.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의 간극은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이미 딸린 식구들이 있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생계가 해결될 수 없었다. 영상을 짓는 일만으론 부족해 세차를 했고, 카페에서 커피를 내렸고, 지금은 식당에서 밥을 짓고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에 자괴감이 들다가도, 매일 함께 부대끼는 식구들이 내 욕심 때문에 굶는 꼴을 봐서야 쓰겠나 하는 생각으로 돌아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
여전히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 정도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책임질 것들이 하나 둘 생겨가면서 포기해서는 안될 시간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올 한해 숱하게 이력서를 뿌리고 면접장을 다녀봤지만, 내가 그렇게 매력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만 거듭 확인했다. 아, 나는 왜 밥벌이의 고단함에 대해 여태 외면하고 살았는가. 이 나이에라도 깨닫게 됨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부끄럽고 민망했다. 부끄러움이 커질수록 불안이 엄습했다.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삶이 아닌데, 내가 가족들을 잘 건사할 수 있을까.
”과거를 좇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
오직 현재 일어난 것들을 관찰하라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그것을 추구하고 실천하라“
< 중아함경 >
늦은 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근 채 나른하게 앉아있다가, 불현듯 수면위로 떠오른 이 문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날 쩔쩔매게 했던 불안은 내 입을 틀어막지도, 양손을 묶지도, 다리를 분지를 수도 없다. 그러니 끝없이 맴도는 허상에 나를 빠뜨리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불안이 있어서 안주하지 않았다. 불안이 있어서 이정도면 되겠지 하며 주저앉고 싶은 날 다시 일으켜 몰아붙일 수 있었고, 울타리 너머의 세계로 발을 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