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200315
야심 차게 영차도를 시작했다. 매달 50만원이라는 투자원금을 조심스럽게 굴려보려는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굴려볼까 고민할 틈도 없이 큰 악재가 닥쳤다. 코로나19가 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위기를 불러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일주일 동안 세계 경제를 위축시키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우선 WHO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위험수위를 세계적 대유행으로 격상시켰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갈등으로 인해 국제 유가도 많이 떨어졌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위기를 막아보기 위해 이런저런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큰 소용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작고 앙증맞은 50만원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주식이 폭락하면 이 기회를 잡아 저가매수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금융위기라는 폭풍 속에 무턱대고 커다란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실천하는 수밖에...
<영차도 시즌 1>을 하면서 정한 가장 기본적인 계획은 50만원을 3가지 투자처에 나눠서 투자하는 것이었다.
50만원 = 해외 비과세펀드 20 + 국내외 ETF 20 + 증권사 발행어음 10
경기가 어려워지는 시점에 주식형 펀드와 ETF에 넣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왕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서 단무지든 깍두기든 담아보기로 결심했다.
1) 해외 비과세 주식형 펀드
2017년 12월, '해외 비과세 펀드'라는 상품을 구입한 적이 있다. 1인당 3천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 상품이었는데 펀드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길래 혹시 몰라 가입해뒀다. 과연 10년 동안 여기에 3천만원을 납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잉여자금이 생긴다면 쓸만한 투자처가 될 것 같았다. 해외주식에 60% 이상 투자하는 펀드라 지금 운용하기엔 위험부담이 조금 따르지만 앞으로 6개월 동안 지금의 사태가 조금이나마 호전된다면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사둔 펀드가 투자하는 곳은 미국, 중국, 독일, 인도, 글로벌 시장으로 총 6개의 상품이 있는데 여기에 20만원을 나눠서 넣어보기로 했다. 물론 지금처럼 전 세계 경제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국가를 분산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지켜본 경과는 걱정보다는 양호했다.
세계 경제가 고꾸라지는 상황에서 피를 보지 않았던 것은 매수 주문 이후 체결까지 2~3일 정도 소요됐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지난 목요일, 금요일에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하는 환경에서도 이 정도로 선방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주에 실질적인 충격이 나타날지는 지켜봐야겠다.
2) 해외 ETF와 발행어음
<영차도 시즌 1>은 사실상 'ETF를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인덱스 펀드와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수수료는 훨씬 저렴하다는 점이 ETF의 장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향후 세계 경제 동향을 지켜보면서 ETF를 사고 파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투자 방식이 될 것이다. ETF 투자를 처음 시작하면서 어떤 펀드를 사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 자신 있게 매수 주문을 넣기가 어려웠다.
길고 긴 고심 끝에 고른 종목은 '일본 인버스 ETF'였다. 사실 이건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충동구매의 성격이 강했다. 일본 시장이 침체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물론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근거가 없진 않았다. 일본이 작년 10월 소비세를 인상했는데 이게 경제에 나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올해 열리는 도쿄 올림픽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비세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얘기이고, 올림픽에 초점을 맞춘다면 조금 더 쉬운 얘기가 될 것 같다. 행여나 코로나19로 인해서 올림픽이 연기되거나 취소된다면? 나름의 소망을 조금 보태면 6개월 동안 충분히 투자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소망이 통한 건지 예측이 맞은 건지 모르겠지만 소기의 성과로 나타났다. 일본 증시가 떨어지면서 반대로 인버스 ETF는 짭짤한 수익률을 보여주었다.
해외 주식 펀드와 ETF는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 매달 10만원은 발행어음에 꼬박꼬박 넣기로 했다. 마침 카카오페이와 NH나무증권의 계좌 개설 이벤트로 4.5% 이율로 6개월 동안 납입할 수 있는 상품을 가입했다.
3) P2P 투자
처음 계획으로는 ETF에 20만원을 투자하는 것이었지만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큰 지금, 남은 8만원을 어디에 넣을지 도무지 정할 수가 없었다. 6개월 단기 적금도 영 마음에 안 들고 주식이나 다른 ETF를 사기에도 애매한 금액이었다. 그래서 카카오페이에서 이용할 수 있는 'P2P 신용 분산 투자 상품'에 8만원을 넣어보기로 했다. 연이율 7.55%라는 매력적인 수익으로 눈을 사로잡지만 세금과 수수료를 제하고 나면 연이율 5% 예금과 비슷한 성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중도 상환될 수도 있고 원리금 지급이 미뤄질 수도 있지만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소액의 투자금을 굴려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았다.
<영차도 시즌 1>의 첫 주는 매우 만족스러운 성과를 올렸다. 글로벌 경제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가운데 나만 홀로 올림픽 특수를 누린 기분이다. 6개월 동안 3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꽤 괜찮은 시작이다. 다음 한 주는 이렇게 성과를 올린 인버스 ETF를 계속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팔고 다른 기회를 모색할지 많이 고민할 것 같다. 하지만 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지수를 관찰하고 거래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소모적인 활동이 될 것 같아서 조금 더 차분히 지켜보는 방향으로 큰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28주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니까.
사실 6개월 동안 고작 3만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 굴리는 것보다는 일상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훨씬 더 큰 효과가 있다. 매달 지출을 5만원 줄이면 9월까지 30만원을 모을 수 있고, 이건 매주 만원 정도 아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성 가능한 시나리오다. 허튼 지출을 줄이기 위해 이번 주에 선택한 것은 반찬가게.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바깥 활동을 줄이기 위해 즉석밥, 3분 카레/짜장 등 구호물자를 대량 구비해뒀다. 처음에는 김치만 사놓고 먹었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식단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배달 음식으로 눈을 돌리려던 찰나에 동네에서 반찬 가게를 발견했다. 월요일 퇴근길에 잠깐 들려 반찬 4가지를 사 왔다. 우엉조림, 낙지젓, 파래무침, 멸치볶음. 반찬 4개를 13,000원에 구매했고 4번(3번이던가?)에 걸쳐 나눠먹었다. 혼자 살다 보니 자연스레 간단히 먹고 들어오거나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는데, 이렇게 반찬을 사 오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일주일 동안 같은 반찬으로 3~4번 식사하는 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2번 이상의 외식(배달 음식)을 줄였으니 보람찬 일주일 식단이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돌아오는 한 주는 어떤 반찬과 함께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