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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도현 May 23. 2021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

육군 훈련병


모두 높은 곳에 있으면서 더 높은 곳을 향한다.



나의 군대 생활은 지금이 내일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경험을 주었다.




23살 나는 대학을 4번을 떨어지고 자살을 시도하다 강원도 횡단을 했다.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고, 조용히 침묵 속에서 지내다가 군대에 입대했다.


제대로 대학도 가보지도 못했고 남들처럼 놀아보지도 못했다.


...............................................................


훈련병 생활은 힘들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고나 작전 사망 시 군견보다 못한 1만 오천 원이 사망 보상의 전부라고 했다. 


나는 계급장도 없는 108번 훈련병이었다.


난 훈련소의 모든 더럽고 힘든 일을 자원했다.


나 같은 실패자가 평생 해야 할 일이었다.


화장실 변기 청소와 잔반 처리, 야간근무를 했는데


어느 날은 잔반(음식찌꺼기)을 청소하다가 발을 헛디뎌 


수년간 잔반을 매립시켜온 오물 처리소 구덩에  빠져버렸다.


몸의 반절이 빠지는 깊은 오물 구덩이었다.


수년간 썩은 음식 찌꺼기 구덩에 빠져 지독한 악취와 우글거리는 구더기, 


온갖 벌레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나오기를 체념하고 말았다. 


동료들 역시 심한 악취에 꺼내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극도의 짜증과 억울함이 몰려오고 설움이 복받쳐 눈물이 고이다가,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비참한 심정이었다.


'이처럼 비참한 상황이 내 인생에서 다시 있을까?'


인생 낙오자, 꼴등, 4 수생, 미래도 없고 이등병도 아닌 훈련병이 오물에 빠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오물 냄새도 안 나고 축축함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오물은 내일이면 씻겨낼 거고,


몇 주 뒤면 이등병이 될 테고


그다음엔 상병, 병장. 그리고 언젠가는 대학생이 될 거다.'


그리고 회사원도 될 거다.'


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인 순간에서


나는 어떤 상황도 이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행복해졌다.


'며칠이면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군인이 되어 계급장도 달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외국어도 하고 결혼도 하고


멋진 세상을 구경하며 살 것이다.'


이후, 훈련소에서의 든 시절을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게 보냈다.


허리가 다치기도 하고, 발에 물집이 고여 고생하고,


자대에서도 폭력과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행복하게 보냈다.


이후, 상병 시절 사랑하던 사람이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을 알고 7천 원 급여와 미래가 없는 내가 부끄럽고 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음악, 소설, 시를 끊고 진짜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이유로 원하던 대학에 갈 수가 없었고 동생에게 큰 사고가 나면서


나는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었지만,  훈련병 오물통 순간을 생각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힘들 때마다 나에게 물었다. "진짜 힘든가? 진짜 비참한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명의 가치도 만 오천 원에서 계속 비싸졌다.


그 순간을 기억하며 난 모든 상황을 견디고 이겨냈다.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젊은 날의 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사람인지, 얼마나 찬란한 미래가 있는지,


108번 훈련병은 오물 속에서 깨달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매일매일 성장하기에


난 행복할 거라고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108번 훈련병은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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