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 주중 미국 대사 커피를 직접 사 마시다
주중 미국 대사로 새로 부임하는 로크 대사가 부임길에 시애틀 공항에서 찍힌 사진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라오면서 중국에서 큰 화제라고 한다. 어린 딸과 함께 공항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시키고 있는 사진인데 뭐가 그리 대수냐 할지 모르지만 아직도 관(官)이 무시무시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중국에서는 고위직 공무원이 직접 커피를 시키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백팩 가방을 메고 있는 소탈한 모습도 충격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우리로 치면 동사무소장 정도만 되어도 운전 기사와 비서가 붙는다고 하니 그럴만도 할 것 같다. 그러니 주지사까지 지낸 대사 정도 되면 당연히 커피를 직접 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고 가방은 수행원들이 들어주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관(官)이 나르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었다던 군부 독재 시대를 지나 민주화를 이루고 민간 출신의 대통령을 최초로 맞아보기도 하고 정권 교체를 통해 수십년간 하나의 세(勢)가 쌓아온 기득권을 무너뜨려 보기도 했다. 심지어 우리는 탈권위를 앞세운 대통령도 당선시켜 보았다. 또한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고 경제력이 곧 새로운 권력이 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30여년 전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관(官)의 힘은 상대적으로 많이 축소되었다. 실례로 우리도 과거 군부 독재 시절에는 동사무소장까지는 아니지만 중앙정부 국장만 되어도 운전 기사와 함께 전용차가 제공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지하철 타다가 광화문역에서 같이 내린 아저씨가 어느 부처 국장일 가능성도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30여년 전과 비교했을때 관(官)의 힘이 줄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민(民)에 비하면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관(官)이 자기 커피는 자기가 직접 시켜 먹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민(民)과 있으면 민(民)이 사다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의미에서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화를 아직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민(民)에서 일하면서 관(官)을 대해야 할 일이 생기면 뚜껑 열릴 것 같은 일을 항상 겪게 된다. 많은 공무원들이 지위를 막론하고 금전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어느 수준으로 대우해 주어야만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다는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모부처 초임 사무관이 공식석상에서 항상 상석에만 앉는게 버릇이 되었는지 개인적인 자리에서도 사람들을 하대하는 걸 보고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사정기관 공무원들은 더 심하다. 본인을 검사라고 소개했던 사람과 10분 넘게 얘기를 했는데 자기가 얼마나 힘있고 높으신 분인지에 대해서만 열심히 떠들고는 나에 대해서는 조금도 물어보지 않았던 조금은 굴욕적이었던 대화도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民)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더 권위적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회 앞에는 시컿먼 에쿠우스들이 (기름값이 전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주유소 앞에 줄지어 서 있지만 네덜란드나 덴마크 국회 앞에는 국회의원들이 타고온 자전거가 줄지어 서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유럽의 탈권위적 모습은 이 곳 제네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스웨덴 출신의 UNISDR 수장 월스트롬 특별대표만 봐도 그렇다. 월스트롬 특별대표는 유엔 사무차장보급이지만 커피를 본인이 직접 타먹는 것은 물론이고 전직원 회의 시간에 일개 인턴 옆자리에 서슴없이 와서 앉는다. 수직적 유교 문화에 길들여진 그 인턴만 괜히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괜찮으니깐 앉아 있어라”란 얘기를 듣고나서야 안심하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어쨌든 로크 대사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임지에서 업무를 보다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관(官)이 민(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으면 한다.
[2011년 8월 19일 최초 작성된 글을 수정 후 재발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