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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스턴 Mar 10. 2016

팁(tip) 문화의 경제학

팁(tip)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오게 되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음식값에 추가로 팁을 얹어서 지불해야 된다고 하면 적잖게 당황한다. 미국에서는 서비스 종류와 소비자 개인의 만족도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체로 15%-20% 정도의 팁을 서비스 제공자에게 주는 것이 식당 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전반에 걸쳐 일반화 되어 있다. 서너 사람이 식사를 하게 되면 1인분 가격을 더 내는 꼴이 되기도 하니 이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미국의 팁 문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 되어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팁으로 지불하는 15%-20%의 추가적 경제적 손실이 팁을 내지 않았을 경우 짠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비효용 보다 적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렇듯 팁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팁이란 엄밀히 따지면 일종의 기부 행위이며 정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부(富)를 재분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조금 오래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2004년 한해 동안 미국 소비자들이 식당에서 지불한 팁만 270억불에 이르렀다고 하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팁이 주로 최저임금을 받는 식당 웨이터나 피자 배달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팁 문화는 세금을 단 1불도 거둬들이지 않고 적어도 270억불에 이르는 복지의 기능을 하는 셈이다. 흔히 경제학에서 우려하는 정부 실패 없이 효율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의 기대 수입이 더 커지게 되므로 소규모 업소 운영자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 없이 상대적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까지 갖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팁에도 정부가 개입을 하기 때문이다. 고용주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팁을 받는 업소는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고용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주마다 그 정도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버지니아주 같은 경우 팁을 받는 업소는 최저임금의 100% 까지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하여 완전 공짜로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영세업자들에게 노동력 고용에 있어서 사실상의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팁의 순수한 복지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팁의 또 다른 문제점은 비대칭 권력 관계에 있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를 고려했을 때 팁이 고용인의 주머니로 쉽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매니저들이 바리스타들 팁의 일부를 가져가 여러 주에서 최근까지 송사로 이어지곤 했다. 주법원들은 대개 피고용인의 손을 들어줘 팁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의 소유임을 인정해주었지만 소규모 업소에서 이를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팁 문화가 정착되고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면 팁으로 효율적인 복지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팁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팁을 제공하는 것이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 되어야 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규범이 소비자가 받은 서비스의 질과 무관하게 강제적 성격을 띄기 시작하게 되면 시장 실패로 이어진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66%는 서비스가 매우 불만족스러웠을 때에도 주위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팁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소비자의 입장에서 팁은 서비스의 질과 무관하게 강제로 지불해야 하는 세금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정부가 재분배 역할을 안하고 직접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모든 주체들이 이른바 최적(optimal) 상태에는 이르지 못한다.


미국의 팁 문화를 바라보면서 최근 복지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이 문화를 정착시켜 보는 것이 어떨까 고민해 봤다. 완전히 새로운 복지 정책을 개발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팁 문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규범을 단시간에 정책으로 형성시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팁 문화가 소득 분배의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정부 예산을 단 한푼도 사용하지 않고 복지의 기능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2012년 9월 18일 최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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